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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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나는 선한 목자다(요 10:11-18)2025-03-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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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다

요한복음 10:11-18

 

성경에는 영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중요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자녀, 신랑과 신부, 양과 목자입니다. 이스라엘은 농업과 목축을 하는 사회였습니다. 이에 농부와 목자는 매우 일반적이며 중요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비유하실 때 농부와 목자를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나는 선한 목자라라는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양은 무엇입니까? 양이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에서 양은 가장 흔하고 중요한 가축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경제적, 종교적, 사회적, 영적인 의미를 가진 중요한 동물입니다. 특히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양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양입니다.

 

양은 어떤 특성이 있습니까?

 

첫째, 양은 다양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사육되는 양은 주로 중동과 지중해 지역에 적응한 품종입니다. 주요 양의 종류는 아와시, 발라디, 마안, 다마스커스, 우르파 양입니다. 그들은 다양한 생김새와 성격과 용도와 특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 다양성이 때로는 불편함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와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쌍둥이도 자세히 보면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에 있습니다. 혹시 나와 다른 성도들 때문에 시험과 상처를 받고 있습니까? 그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탁월함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양은 연약합니다.

양은 시력이 매우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방향 감각이 부족하여 길을 잃기 쉽습니다. 성경은 길을 잃은 양에 대한 비유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양의 연약한 시력의 특성을 언급한 것으로 목자를 떠나면 길을 잃고 방황합니다. 길을 잃은 양은 인간의 영적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상으로 믿음을 잃어버렸거나 방황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길을 잃은 양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하나님의 잃은 양을 찾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양입니다. 예수님을 의존하지 않고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방황하고 유리하며 악한 마귀의 공격에 깊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혹시 예수님을 멀리 떠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양은 무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양은 혼자 있으면 불안하며 무리와 함께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물로, 홀로 남겨지면 두려움에 빠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양으로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안전과 안식을 주는 양의 우리와 같습니다. 때로는 살이 부딪치고 땀 냄새로 인해 불쾌하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벗어나면 위험과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현대 교인들에게 있어 교회 공동체는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편과 불만을 느끼면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라 이후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함께 교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혹시 함께 하는 교회 생활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교회가 안전한 피난처요 어머니의 품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양은 다양성과 연약성과 공동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이 안전하고 평안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은 목자입니다. 만약 목자가 없다면 양은 다양성으로 인해 끊임없는 다툼이 있을 것입니다. 연약함으로 인해 짐승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무리에서 이탈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양을 위해 목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목자는 하나님의 백성, 곧 하나님의 자녀들을 목양하는 존재입니다. 그 목자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목회자, 영적 리더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의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11절과 14절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절도와 강도와 도둑과 삯꾼과 다른 목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양을 착취하고 억압하여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많은 지도자는 선한 목자가 아니라 악한 목자였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그들과 전혀 다른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어떻게 하셨습니까?

 

첫째,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11절과 15절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양의 생명을 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합니다. 양의 능력과 상황을 알기에 자신의 목숨을 버려 보호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028절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그 섬김의 절정은 자기 목숨을 사람들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양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고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에베소서 52절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것은 선한 목자가 양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의 자격은 양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을 사랑해야 목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을 위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죄와 허물로 죽은 자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희생을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둘째, 양을 알고 계십니다.

14절과 15절은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합니다.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알고 계신 것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양을 알고 계십니다. 양을 알고 있기에 선한 목자는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는 양의 능력과 상황과 환경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의 한계와 상처와 필요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양의 무엇을 알고 계셨습니까?

마태복음 936절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기진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얼마나 어렵고 고생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력을 다하여 탈진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는 육신의 눈으로만 보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알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이 고생하고 기진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물을 씻어 주시며 상처를 치유하시며 품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편 628절은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통해야 합니다. 이는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길을 잃은 양은 소리 높여 목자를 불러야 합니다. 우리에게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양을 인도하십니다.

3절과 16절은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합니다. 목자는 날이 밝으면 문을 열고 양의 이름을 불러 푸른 초장으로 인도합니다. 또한 날이 어두우면 양의 이름을 불러 우리 안으로 인도합니다. 특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유리하는 양의 이름을 불로 위험과 위기에서 건져내어 구원합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910절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을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는 삭게오와 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처럼 삭게오를 비난하고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찾아오셨으며 만나셨으며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10절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죽이고 멸망시키는 도둑과 강도와 같은 삯꾼 목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선한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인도하며 생명을 얻고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를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양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27절과 28절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합니다. 목자가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가 있는 것과 같이 양도 선한 양과 악한 양이 있습니다. 선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반면에 악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고집대로 살며 악한 마귀와 세상으로부터 위험을 당합니다.

 

우리는 악한 양이 아니라 선한 양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선한 양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선한 목자와 선한 양의 관계를 통해 생명과 풍성함을 얻고 누렸으면 합니다. 그 생명과 행복을 전하고 나누는 하나님의 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