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의 문이다 요한복음 10:1-10 몇 년 전에 교회 식당과 방이 난장판이 된 적이 있습니다. 저는 2층에서 다른 목사님과 이야기하고 있었고, 아내는 출타했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배웅을 하고 식당 문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식당 문을 닫기 위해 내려갔다가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누가 식당에서 라면을 끓여 먹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식당 방에 있는 상에는 라면을 먹고 쏟아 놓았고, 천장과 바닥에는 콜라를 쏟아 놓은 자국으로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너무 화도 나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오셔서 현장을 조사하며 지문 검사를 했습니다. 마침 교회 앞에 주차해 있었던 차의 블랙박스에 학생들 몇 사람이 교회 옆에 있는 주택의 담을 넘어 들어와 난장판을 쳐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학생들 몇은 제가 알고 있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경찰이 학교를 방문하고 인적 사항을 확인했습니다. 부모님에게 연락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6명의 학생 중에 단 한 명의 부모만 찾아와 사과하고 사택에서 훔쳐 간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문을 통하지 않고 담을 넘어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자기 계시 중 ‘나는 양의 문이다’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기서 양은 성도들을, 문은 예수님을, 양의 우리는 교회를 비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신 배경은 무엇입니까? 1절과 8절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와 대비되는 절도와 강도에 대해 언급하신 것입니다. 절도는 헬라어로 ‘클렙테스’(κλέπτης)이며, 이는 몰래 속임수를 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반면 강도는 ‘레스테스’(λῃστής)로, 폭력을 사용하여 약탈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들은 모두 양을 탈취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악한 자들로,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며 보호하고 인도하는 선한 목자와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 구원을 받습니다. 9절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입니다. 즉 구원의 문이십니다. 그 누구도, 어떤 사람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누가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도행전 4장 12절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합니다. 바울은 구원을 주는 다른 존재는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늘 아래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인간에게 주어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독선적이며 진부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로마서 10장 9절과 10절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입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양 우리에 문이 하나인 것처럼,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한 구원을 위한 유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꼴을 얻습니다. 9절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문의 기능은 들어가고 나오는 것에 있습니다. 강도와 절도는 문이 아니라 담을 넘습니다. 그러나 양은 문을 통해 우리에 들어가고 나갑니다. 양은 낮에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꼴을 배불리 먹습니다. 밤이 되면 문을 통해 안에 들어와 잠을 잡니다. 양은 들어가며 나오며 생명과 성장에 필요한 꼴을 먹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허물을 죽은 죄인을 살리심으로 구원을 얻게 하실 뿐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양에게 필요한 것은 꼴, 즉 먹을 양식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은 영혼의 양식인 말씀과 육신의 양식인 음식입니다. 예수님은 그 양식을 공급하시고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에스겔 34장 12절과 14절은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고 합니다. 목자가 흩어진 양을 찾듯이 예수님은 양을 찾을 것입니다. 흐리고 어둡던 날에 흩어졌던 모든 곳에서 양을 건져내십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고 방황하는 양을 돌아오게 합니다. 상처 입은 양을 싸매 주고 약한 양을 강하게 합니다. 좋은 꼴을 먹이고 양의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둘 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우리의 양을 누워 있게 하며, 살진 꼴을 먹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야 꼴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기에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얻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필요를 공급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풍성함을 얻습니다. 10절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합니다. 도독이 오는 목적은 도둑질하고 살인을 하고 멸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반면에 선한 목자가 온 목적은 양에게 생명을 얻게 하며 더 풍성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으로 생명을 얻게 하실 뿐 아니라 더 풍성한 것을 얻게 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에서 부자에 관한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는 밭에서 풍성한 소출을 얻었습니다.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어 더 큰 곳간을 짓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둘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평안히 먹고 마시며 즐거워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밤에 그의 영혼을 찾으시면 그 많은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해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 영혼은 의식주가 해결되면 행복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풍족할 때 더 큰 공허와 갈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명의 풍성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양의 문이신 예수로 인한 행복한 삶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행복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없으면 영원한 사망과 저주와 지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구원이 있기에 영원한 생명과 은총과 천국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많은 재물과 성공과 권세를 소유하고 있으나,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행복은 소유나 환경과 상황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풍성함의 핵심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에 있습니까?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신명기 33장 29절은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돕는 방패가 되어 주시며, 영광의 칼이시기 때문입니다. 대적들이 복종하게 하시며, 대적을 이길 수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양은 문을 통해 우리 안에 있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혹시 세상에서 불안과 염려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평안과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명심할 것은 양은 문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오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양의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와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고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벗어난 양은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안전과 평안과 행복을 주는 곳입니다. 그런 안전과 평안과 행복을 주는 양의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인간적으로 좀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안전과 평안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교회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양의 문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필요를 공급받습니다. 예수님 안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고 필요를 공급받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와 같은 구원과 공급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