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한 달(4) : 겸손 마태복음 11:28-30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며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주일은 ‘인생은 일생이다’, 둘째 주일은 ‘열정으로 살라’였습니다. 셋째 주일은 ‘사랑으로 살라’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럼에도 사랑하고 먼저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오늘은 ‘겸손하게 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예화) 겸손한 슈바이처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음악가요 의사요 철학자요 목사였습니다. 그가 선교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지을 때, 나무를 베고 운반하고 못질하는 일을 직접 했습니다. 그때 혼자 많은 일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슈바이처는 옆에 있던 한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저는 지식인이어서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막일은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슈바이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도 자네만 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네. 그러나 웬만큼 배웠다 싶으니까 이젠 아무 일이나 다 하겠더군.” 겸손한 사람은 많이 배웠다고 쉽고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로 사람을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이해하고 교만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며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런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경은 교만과 겸손에 관해 비교하며 무엇이라고 합니까? 잠언 16장 19절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합니다. 잠언 18장 12절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은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은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합니다. 겸손한 자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교만한 자들과 빼앗은 물건을 나누는 것보다 낫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교만하면 파멸이 뒤따르지만 겸손하면 영광이 뒤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교만은 무엇입니까? 윌리암 D 베커스는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죄는 교만, 시기, 분노, 탐욕, 나태, 정욕, 탐식입니다. 그중에 교만은 모든 죄의 근본적인 뿌리라고 합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죄악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창세기 3장 5절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합니다. 마귀는 하와를 향해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아져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한 것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이 되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생각과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교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신명기 8장 14절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라고 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경건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과 불순종과 불경건은 교만의 나무에서 열리는 죄의 열매입니다. 반면에 겸손은 무엇입니까? 성 어거스틴은 “겸손은 다른 모든 미덕의 기초이며, 이 미덕이 존재하지 않는 영혼에는 단순히 겉모습 외에는 다른 미덕이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하고 아름답고 바른 마음과 행동 규범은 겸손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겸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잠언 15장 33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여호와를 경외하면 지혜를 얻으며, 사람은 영예를 얻기에 앞서 먼저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심을 알고 모든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신앙과 순종과 경건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설 때 후회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겸손입니다. 가장 교만할 수 있는 조건과 자격을 가지고 계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예수님은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첫째, 예수의 마음은 겸손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과 30절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헬라어 πραΰς(프라위스)로 친절한, 인정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겸손한 마음은 헬라어 ταπεινός(타페이노스)로 낮은, 비천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은 지치고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안식과 평안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겸손한 자가 예수님께 나와 배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빌립보서 2장 5절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셨습니다. 품으라는 것은 φρονέω(프로네오)로 ‘전념하다, 판단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것을,즉 겸손한 마음에 전념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음은 καρδία(카르디아)로 감정과 열정의 자리로 용기나 비겁, 기쁨이나 슬픔, 사랑과 미움 같은 것을 나타냅니다. 때로는 생각이나 상상력의 자리이며 의지와 결심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마음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에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자로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고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교회를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서로 다름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는 것에 있는 줄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삶은 겸손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8절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셨기에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비천한 말구유에 사람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이셨으나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아무 죄도 없으셨으나 죄인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시고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은 바울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사도행전 20장 19절과 20절은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고 눈물을 흘리며 고난의 시험을 참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여 사람들을 유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했습니다. 누가 모든 특권을 주장하지 않고 버릴 수 있습니까?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는 종으로 살 수 있습니까? 누가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겸손한 마음을 품어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의 요구는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악한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으시고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 아들들을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역시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0장 27절과 28절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높아지려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최고가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으며,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많은 사람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되기를 요구하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하고 최선을 다해 헌신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무엇에 있습니까?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때가 되면 겸손한 자를 높여 주십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향해서도 겸손을 요구하십니다.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 되어 섬김과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고 겸손한 자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겸손하면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품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겸손이며, 예수님의 삶이 겸손이며, 예수님의 요구가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품고 예수님처럼 살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설 때 후회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