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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내 생애 마지막 한달(3) : 사랑(요일 4:7-11)2024-03-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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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한 달(3) : 사랑

요한일서 4:7-11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며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주일은 인생은 일생이다’, 둘째 주일은 열정으로 살라였습니다. 악한 열정이 아니라 선한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냐? 환경이냐? 능력이냐? 소유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정이 있느냐? 열정이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열정을 유지하고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사명 감당하며 동역하며 성령 충만한 것입니다.

 

우리가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위해 요구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오늘은 사랑하며 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눌 것입니다.

 

예화) 구족 화가 안미순

결혼을 며칠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목 아래가 전신마비인 장애우 자매가 있습니다. 사고가 난 후 한 달 만에 의식을 찾은 그녀에게 약혼자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사고 차는 보험에 들지 않아 큰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변두리 작은 병원에서 보상도 없이 병원 생활을 2년 가까이 해야 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분노의 대상이었고, 자살을 시도하려 했으나, 전신마비였기에 스스로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상상을 초월한 삶의 의지와 신앙의 힘으로 그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고 구필 화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세계 구족화가협회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그 자매의 이름은 한미순이며, ‘사랑할 시간도 없는데 왜 미움을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가 극도의 분노와 원망과 절망과 좌절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은 것은 사랑할 시간도 없는 왜 미워하며 살아야 하는가?였습니다.

 

성경에서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작은 지파 베냐민 출신이며, 작은 사람이기 때문에 왕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울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위이며 충신이었던 다윗을 죽이기 위해 평생을 보냈습니다.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한 사울의 인생은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사랑하지 않고 미움을 가지고 있던 사울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으며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아닌 미움을 소중한 인생을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입니다. 우리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관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334절과 35절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계명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제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삶은 예수님을 닮은 자로 순종하며 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서로를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첫째, 그럼에도 사랑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44절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았던 바울도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원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에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수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사랑하지 못합니다. 미워할 뿐만 아니라 힘이 있다면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 그것인 인간적인 생각이며 감정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로마서 1219절과 20절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원수 갚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원수가 굶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이 마르면 마실 것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놓은 것같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럼에도 사랑함으로 후회하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19절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우리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의인을 위해 죽는 자도 쉽지 않으며 선한 사람을 위해 용감히 죽는 사람이 혹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악한 사람과 죄인을 위해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확실히 증명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10절과 11절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반드시 사랑해야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가사의 일부에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길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 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주길 원했네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 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용기입니다. 예수님처럼 먼저 사랑했으면 합니다. 먼저 용서하고 먼저 화해하고 먼저 섬기고 먼저 높여주고 먼저 손을 내밀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에 가장 후회하는 것은 더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하며 생활한 것입니다.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함으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으며 후회하지 않은 인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할 계획을 하셨습니다. 그 제자 중에는 예수님을 팔 악한 생각을 하고 있는 가롯 유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부인할 베드로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면 도망할 제자들과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31절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과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는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변함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아주 쉽게 변하며 포기합니다. 우리에게도 변함없는 사랑,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사랑은 어떠했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죽기를 자청하며 결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어린 종의 말을 듣고 두려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를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밤을 새웠으나 물고기를 잡지 못했을 때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을 위해 생선을 구원 아침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베드로를 향한 사랑은 어떠하셨습니까?

요한복음 2115절은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그를 향해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비록 예수님을 실망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전히 제자로 인정하셨으며 그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직분을 받고 헌신하며,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포기하지 않은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를 불편하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망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남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남과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사랑할 때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혹시 미워하고 나아가 증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들까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충만한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람들을 섬기는 호스피스 사역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남은 생의 시간에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미움과 원망으로 깨어지고 멀어진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그것이 떠나는 사람도 남은 사람도 모두 행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사랑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사랑에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있습니다. 우리의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했으면 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