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호세아 2:14-23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하나님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하나님에 대해 다양한 생각과 이미지가 있습니다. 때로는 집요하게 죄인을 추적하여 찾는 형사, 혹은 죄인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시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하시는 판사입니다. 소년 재판을 주로 하는 천호종 판사가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호통 아저씨, 비행 청소년의 아버지, 사이다 판사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죄를 범한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판결을 하는 것만 아니라, 그들이 변화되어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호종 판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죄인을 대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죄인을 향해 포기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거룩하게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음탕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라고 하셨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멜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멜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들은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 고멜과 사이에서 낳은 음란한 자식이었습니다.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아들 이스르엘과 딸 로루하마와 아들 로암미였습니다.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흩으신다’, 로루하마는 ‘절대 아버지의 사랑이 없다’, 로암미는 ‘결호 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기에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자녀들의 이름을 로암미는 암미로, 로루하마는 루하마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암미는 ‘내 백성이다’, 루하마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에 구원과 회복이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거룩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멜은 호세아의 사랑으로 결혼하여 자녀까지 낳았으나 어떻게 했습니까? 5절은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고 합니다. 고멜은 음행을 했습니다. 부끄러운 일을 행했습니다. 그것은 남편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라간 것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사랑하지 않아야 할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를 음행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죄는 매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을 행한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만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들을 사랑하며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남자들을 따라간 고멜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호세아의 사랑을 버리고 떠난 고멜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7절은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고 합니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떠난 고멜은 쫓아다녀도 따라잡지 못할 것입니다. 찾아다녀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제야 이제는 발길을 돌려서 나의 남편에게로 돌아가야지. 나의 형편이 지금보다 그때가 더 좋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간섭으로 여겨 떠났던 둘째 아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여 아버지 집을 그리워했습니다. 때로는 신앙 생활하는 것이 간섭과 부담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집중하지 않으며 대로는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후회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간섭과 부담스러워도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소중한 것을 상실할 것입니다. 11절과 12절은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그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에게 먹게 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백성으로 삼아 주셨으며, 예배하며 섬길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손으로 수고한 대로 열매를 거두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땀을 흘리며 수고해도 결실을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을 모두 잃어버리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길 수 있는 시간과 재물과 건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 모든 것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지금 헌신할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재물과 건강을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며 헌신할 수 있는 시간과 재물과 건강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13절은 ‘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합니다. 고멜은 호세아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보이기 위해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을 하고 따라갔습니다. 호세아를 잊어버리고 사랑을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바알을 섬긴 기간만큼 벌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관한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나 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나 배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에 대해 감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안일함과 나태함에 빠져 있습니다. 혹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성경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에 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히브리서 12장 5절은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으며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죄를 범하면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때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여기며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책망과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14절은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라고 합니다. 호세아를 떠난 고멜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김으로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후회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은 의기소침하여 매우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설득하여 광야로 데려가 말로 위로하셨습니다. 우리도 죄로 인해 고난과 징계를 받으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위로하며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위로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 소망을 얻었습니다. 15절은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빼앗긴 포도원을 이스라엘에 되돌려 주었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을 때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면 절망이지만, 하나님이 돌아오면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죄악은 우리에게 절망을 가져다주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절망의 늪에서 소망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평안을 얻었습니다. 18절은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전쟁과 기근으로 평안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매일매일 불안해서 더 우상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와 언약을 회복하면 황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불안에서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평안과 안식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품에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안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평안은 상황이니 환경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는 평안입니다. 이에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평안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응답을 받았습니다. 21절과 22절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응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은 응답합니다. 하늘에서 이슬과 비가 내리고 땅은 포도주와 기름으로 응답합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늘에서 이슬과 비가 내리고 땅은 풍성한 열매를 낼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문은 닫힙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돌아오면 은혜의 문이 열립니다. 은총의 문이 열립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며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이에 호세아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6장 1절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합니다. 호세아는 하나님께 오라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짖으셨으나 치유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매를 치셨으며 상처를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거룩한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어떻게 됩니까? 23절은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를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은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혹시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나 있다면 돌아올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온전한 하나님이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