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열매, 풍성한 삶 요한복음 15:1-8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그중에 우리가 읽은 말씀은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에 관한 비유입니다. 비유는 천상의 진리를 지상의 것을 가지고 설명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성한 열매를 통해, 풍성한 삶에 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1절과 2절은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합니다. 농부와 참 포도나무와 열매를 맺는 가지입니다. 농부는 아버지 하나님을, 참 포도나무는 에수 그리스도를, 열매 맺는 가지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는 목적은 열매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는 2년생이 된 포도나무 가지에서 열립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며 기대하시는 것은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며 기대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하는 열매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열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성도들의 충만하고 풍성한 영적 상태입니다. 선과 악에 관한 행위의 판단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충만하지 않으며 선을 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인 침체와 기근과 결핍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 혹시 영적으로 충만하지 않으며, 악을 행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충만하고 선을 행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맺어야 하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첫째,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마태복음 3장 8절은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고 합니다. 온전한 회개는 죄를 깨닫고 마음 아파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즉 구체적인 변화와 성장과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자로 거룩하고 정결한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후에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둘째, 복음의 열매입니다. 로마서 16장 5절은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해서 처음 구원을 받은 사람은 에배네도였습니다. 이에 그를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씨를 뿌리며 가꾸어 열매를 거두는 영적 농사와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복음의 열매는 누구입니까? 더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 5장 22절과 23절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자는 유체의 일을 합니다. 반면에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합니다. 특히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는 거룩한 성품을 자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인격을 가진 자로 사는 것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넷째, 수고의 열매입니다. 시편 128편 1절과 2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아무리 수고를 해도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거두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손으로 수고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은총과 형통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손으로 수고하고 그 열매를 풍성해 거두는 자라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입술의 열매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은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찬송의 제사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맺어야 하는 영적 열매입니다. 또한 다른 열매를 맺게 하는 기초요 능력입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가 회개의 열매, 복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 수고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가 되어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뭇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어떻게 합니까? 2절은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합니다. 농부는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제거해 버립니다. 또한 더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손질합니다. 이것을 전정(剪定) 혹은 가지치기라고 합니다. 가지치기의 목적은 열매를 맺는데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 병충해에 걸리지 않게 나무를 건강하게 만들고, 더 충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제거하듯이 징계와 심판하십니다. 또한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십니다. 가지치기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가지치기를 통해 우리는 영적으로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4절과 5절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합니다. 열매는 가지에 열리기에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가지가 부러지거나 잘려서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지는 나무를 통해 계속해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며,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할 때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친밀한 영적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친밀한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59장 1절과 2절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무관심과 무능력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막고 훼손하는 죄가 있지 않습니까? 그 죄를 회개하면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9절과 10절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는 것이 사랑이며, 사랑하면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순종이 영적 열매이며,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느헤미야 9장 29절은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게 하는 장애물은 불순종입니다. 그 불순종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교만입니다. 교만하면 목을 곧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무시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고 패역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합니다. 누가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겸손한 사람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듣고 순종함으로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7절과 16절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고 항상 더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며, 더 풍성한 열매를 위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혹시 기도하지 않기에 열매 없는 자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영적 기근과 결핍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야고보서 1장 6절과 7절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는 자로 살기 위해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풍성한 열매는 기도 응답의 은총이며 결과입니다. 반면에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 응답을 확신하지 못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8절은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때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 열매를 맺을 때 어떤 일이 있습니까? 우리가 맺는 풍성한 열매, 즉 회개에 합당한 열매, 복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 입술의 열매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드러내며 증거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라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와 복음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와 입술의 열매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와 하나님 말씀의 순종과 믿음의 기도를 통해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더 풍성한 삶, 충만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