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확신하고 거하라 디모데후서 3:12-15 이번 주 수요일에 제자훈련을 개강하는 새로운 삶 과정을 준비하면서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이며 제자였던 디모데를 향해 권면하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배우라. 확신하라.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나누며 계속해서 배우며 확신하고 머무르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말세에 어떤 현상이 있다고 합니까? 바울은 말세에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은 사랑할 것입니다(3:1-7).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할 것입니다(3:5). 이는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아야 할 것을 사랑하는 사랑의 변질과 왜곡의 현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형식적인 경건 생활은 있으나 경건 생활의 능력은 부정할 것입니다. 말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말세에 온전하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입니다. 또한 말세에 어떤 악한 일이 있습니까? 8절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모세를 대적했던 얀네와 얌브레와 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대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부패한 사람이며, 믿음에서 떠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악함은 무엇에 있습니까? 13절은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합니다. 얀네와 얌브레와 같이 복음의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악하고 속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악한 마귀에게 속아서 더욱 악해져 간교한 말과 방법으로 성도들을 더 속일 것입니다. 말세에 비진리에 대한 영적 미혹이 있으며, 불경건한 영적 유혹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당시와 다를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경건하게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건하게 살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더 악한 세상이 되며, 더 악한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영적 미혹과 유혹에 빠져 이단에 빠지며, 경건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경건하게 살지 않습니다. 말세를 사는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혹시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와 돈과 쾌락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경건한 삶의 모습도 없으며 능력도 부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악한 마귀와 사람들의 미혹과 유혹에 빠져 복음에 합당하게 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적 분별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건하게 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그런 말세를 사는 디모데에게 무엇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세대, 경건하지 않은 세대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배워야 합니다. 14절은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합니다. 본문의 배움은 μανθάνω(만다노)로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특히 학습의 의미로 배우고 익히는 것, 즉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배움은 지식과 지혜를 얻게 합니다. 거룩한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누가 배우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교만한 사람은 배우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배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진행하는 새로운 삶 제자훈련에 겸손한 마음으로 많은 성도가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권면합니다.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은 무엇에서도 배웠습니까? 고난을 통해서도 배웠습니다. 시편 119편 7절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고난을 겪는 것이 유익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천둥소리라고 합니다. 갈등을 통해서도 배웠습니다. 로마서 7장 21절은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악을 행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 안에 역사하는 죄였습니다. 그 갈등 속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악함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성령 충만을 사모했으며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첫째,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성경을 연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그 온유와 겸손한 마음을 배우는 자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안과 안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사명을 배워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대상을 이해하고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갈등과 실패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소중한 교훈과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과 방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말세에 배우는 자가 되어 악한 세상을 이기며,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