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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하나님의 사랑은 끊을 수 없습니다(롬 8:29-39)2024-08-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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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은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29-39

 

우리가 자주 듣고 부르며 감동하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찬송가 304장으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찬송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종이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측량하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놀랍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결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요즈음 어떻습니까?

혹시 신앙과 생활에 행복과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열정도 헌신도 식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날씨 때문인가요? 사람 때문인가요? 어떤 특별한 상황과 환경 때문인가요?

 

바울은 충만한 삶을 위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318절과 19절의 현대어 성경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러하듯이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얼마나 한없고 넓으며, 얼마나 깊고 높은가를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너무도 커서 여러분은 그 끝을 볼 수도 없고 또 그 사랑을 다 헤아릴 수도 없음을 스스로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여러분도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를 위해, 그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알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온전히 헌신할 수 있습니다. 충만하고 행복한 신앙과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알고 깨닫기를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에 나타나 있습니까?

29절과 30절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구원의 진리와 서정에 관한 것입니다.

 

개역 개정에는 중요한 주어가 생략되었습니다. 그 주어를 넣은 말씀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하나님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하나님이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하나님이 의롭다시고 의롭다고 하신 그들을 또한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있습니다. 그 구원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예지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예정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넷째, 하나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이 의롭게 하셨습니다. 여섯째,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즉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과 소명과 양자와 칭의와 영화를 통해 구원의 서정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확신할 때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시험이나 유혹을 받아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화) 7가지 질문의 힘

도르시 리즈의 원활한 대화와 창조 사고를 이끄는 7가지 질문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리즈는 질문의 힘을, ‘질문을 하면 답이 나온다. 질문은 생각을 자극한다. 질문을 하면 정보를 얻는다. 질문을 하면 통제가 된다. 질문은 마음을 열게 한다. 질문을 귀를 기울이게 한다. 질문에 답하면 스스로 설득된다라고 합니다.

 

GPT 시대에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질문의 기술입니다. 그래서 쳇 GPT를 유용하게 사용하는 데 필요한 것은 질문입니다. 직장과 사회, 교회와 가정에서 요구되는 것도 질문입니다.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 는 어떤 답을 끌어내느냐? 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방식은 부모와 교사가 마음껏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질문과 대답의 방식을 사용하셨습니다. 바울도 질문과 대답을 통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귀한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무엇을 질문하고 있습니까?

누가 대적할 수 있는가? 누가 고발할 수 있는가? 누가 정죄할 수 있는가? 누가 끊을 수 있는가? 바울은 이 네 가지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질문과 대답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누가 대적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31절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이루신 구원에 대해 더이상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끝까지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186절은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우리 편이 되어주십니다. 항상 우리를 위하시기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대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에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안전하고 평안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둘째, 누가 고발하고 정죄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고발하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33절과 34절은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합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넘어질 수 있습니다.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죄책감이 일어납니다. 구원의 확신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고발하고 정죄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210절과 11절은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을 밤낮으로 참소하는 악한 마귀입니다. 그를 큰 용 혹은 옛 뱀 곧 사탄이라고도 합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가 죄를 범할 때마다 고발하며 정죄합니다. 고발은 어떤 잘못이나 죄가 있다고 밝히는 것이며, 정죄는 판단하고 죄로 정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며 판단하고 비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믿지 않게 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심하게 합니다. 그래서 죄의식과 죄책감에 빠져 하나님을 불신하고 멀리하며 떠나게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정죄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로마서 81절과 2절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더이상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더는 죄의 종으로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망의 법에 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죄의 은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중보자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변화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 누구도 우리를 고발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범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자로 감사하며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다시는 악한 마귀의 고발과 정죄의 빌미를 주지 않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기에 진정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누가 끊을 수 있습니까? 아무도 끊을 수 없습니다.

35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을 위해 받는 고난으로 곤고와 핍박입니다. 그것은 결핍으로 배고픔과 헐벗음입니다. 생명을 위협받는 위험과 칼입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도, 결핍도, 위협도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멀리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우리는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첫째,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37절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합니다. 사랑은 가장 강력한 힘이요 능력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둘째, 분명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38절과 39절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합니다. 바울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확신은 죽음이나 생명도, 천사들이나 악마들도,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어떤 능력도,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영적 권세와 능력도, 시간적으로 현재나 장래도, 장소적으로 높음과 깊음도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그 어떤 존재와 시간과 장소에서도 결코 우리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알고 확신하는 자에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을 잃어버렸을 때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세상의 삶에 쫓기며 즐기기 위해 신앙을 외면할 때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멀어졌다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기다리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받았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고발하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고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