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 베드로후서 1:5-7 서울 베이직 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정민 목사는 MBC에서 25년 동안 방송을 하면서 자신이 매일 전하는 뉴스가 것은 나쁜 소식, 즉 bed news라는 것을 발견하고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아내가 다니는 온누리 교회에 출석하며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 즉 Good news를 전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이제는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소식, 곧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반(反)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반(反)그리스도인’이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타 종교인이지만 기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비(非)그리스도인이지 반(反)그리스도인은 아니다. 비록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예수님께 호감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반(半)그리스도인, 즉 ‘하프(half)’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과연 누가 반(反)그리스도인인가? 반(反)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오해하게 하고, 심지어 교회를 외면하게 해서 사람들을 구원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알지만 그 뜻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그 뜻에 반하는 일만 일삼는 사람, 그가 바로 반(反)그리스도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보배로운 믿음과 약속을 통해 생명과 경건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종종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경건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자로 살기 위해 신의 성품, 즉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것이 반(反)그리스도인과 반(半)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며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살아가기를 결단하며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베드로는 구체적으로 8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김명남 목사는 이 내용으로 ‘신앙의 7층 집’이라는 책에서 “신자는 피하는 특성과 참여하는 특성을 가져야 한다. 신앙생활은 건축이다.”라고 합니다. 그는 형제 우애와 사랑을 같은 의미로 생각하며 7층 집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 베드로도 건축에 대한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신앙의 성장, 혹은 단계에 관해 교훈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건축의 비유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믿음입니다. 5절은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이라고 합니다. 건축을 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하는 일과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초 공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신앙생활의 기초로 믿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헬라어 πίστις(피스티스)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단어이며 개념입니다. 그 믿음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즉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입니다. 이를 신앙 고백적 믿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구원을 받은 자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위탁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기도로 나타나며,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확신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린도후서 13장 5절은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면,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있는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고 있는가? 를 점검하고 확증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모든 일을 하나님께 위탁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더 견고하고 성장하고 온전해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질 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은 자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덕입니다. 5절은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믿음에 덕을 더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덕은 무엇입니까? 덕은 헬라어 ἀρετή(아레테)로 미덕 혹은 건덕입니다.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하면 탁월함 혹은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믿음의 확신을 가진 자로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덕에 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린도전서 10장 23절과 24절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이 있다고 해서 다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두 유익한 것이 아니며 다 덕을 세우는 것도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유익을 생각하지 말고 다른 유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영향력이 있는지 생각하고 조심합니다. 우리가 할 말을 다 하고, 모든 행동을 하는 것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덕이 되며 유익이 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각난다고 다 말하고, 할 수 있다고 다 하지 않고 덕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지식입니다. 5절은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덕에 지식을 더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무엇입니까? 지식은 헬라어 γνῶσις(그노시스)로 ‘알게 되다, 깨닫다’는 뜻입니다. 덕에 지식을 더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유익이 되며 덕이 되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싫어하시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잘못된 지식이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바울은 바른 지식에 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로마서 10장 2절과 3절은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에게 대한 거룩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지식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열심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에 자신의 의를 세우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의에 복종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열심히 섬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의 충성과 헌신, 인정과 칭찬은 모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진 것도,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로 인한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의 모든 행위와 헌신은 자기 의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연약한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으로 안타깝게 여길 수 있습니다. 바른 지식을 통해 덕이 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절제입니다. 6절은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지식에 절제를 더할 것을 권면합니다. 절제는 무엇입니까? 절제는 헬라어 ἐγκράτεια(엥크라테이아) 로 자제(self-control)입니다. 즉 모든 것을 적절하게 하는 자기 조절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절제의 능력에 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린도전서 9장 24절과 25절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합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하는 사람은 일등을 해서 상을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상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모든 일에 절제를 한 사람입니다. 이는 상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자제하고, 조절하고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선수들에게 있어 절제는 절대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 체급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음식에 대한 절제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먹어 계체량을 통과하지 못하면 경기에 뛰어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절제에 대해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하면 아내와 분방하지 말라고 합니다(고전 7:5). 왜냐하면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절제할 수 없으면 결혼하라고 합니다(고전 7:9). 절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입니다(갈 5:23). 교회 직분자는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딤전 3:2). 교회를 섬기는 여자들도 절제해야 합니다(딤전 3:11). 늙은 남자들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딛 2:2).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절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기 위해 청지기로 세워진 사람들은 더욱 절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절제하지 않으면 섬길 수 있는 에너지도, 시간도, 재물도 남아 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욕망과 분노를 절제할 때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절제는 헌신과 거룩함의 방법이며 능력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신의 성품, 즉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으로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에 관해 나누었습니다. 믿음은 가장 기초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덕은 자신만 아니라 교회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됩니다. 지식은 거룩한 영적 분력을 가지고 살게 합니다. 절제는 거룩과 승리의 능력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에 관해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여 더 온전하고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더 많은 변화와 성장을 통해 다른 성도들을 세우며 교회를 세우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