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을 받으라 사도행전 2:1-13 오늘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신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기독교 교리에서 많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성령입니다. 성령은 사물이 아닙니다. 우주적인 힘이 아닙니다. 모호한 기운이 아닙니다. 느낌이나 감각이 아닙니다. 성부 아버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으로 제 삼위가 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을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4장 16절과 17절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保惠師)는 헬라어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로 이 단어는 두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παρά(파라)는 ‘곁으로’, κλητος(클레토스)는 ‘부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보혜사를 정확하게 번역하고 해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에 영어 성경은 보혜사를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KJV(King James Version)는 Comforter(위로자)로, NIV(New International Version)는 Counselor(상담자)로, NKJV(New King James Version)는 Helper(돕는 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위로자요 상담자요 돕는 자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 제자들을 떠나신 후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실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시는 것은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실제로 성령의 세례와 성령 충만을 주셨습니다. 성령 강림 주일에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듣고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의 은혜가 부어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1장 4절과 5절은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선물을 기다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얼마있지 않아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성령의 세례와 충만이 임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1장 12절과 14절은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감람원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락방에 올라갔습니다. 그곳에는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명이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과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백이십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기도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것과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기도하며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맛디아를 사도로 뽑았습니다. 1장 25절과 26절은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도하며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사도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과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서 세워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과 마음과 생각이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명과 목적이 다르면 함께 사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과 맛디아를 선택하고 모든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 누구를 선택하실지 기도하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맛디아가 뽑혔으며 다른 열한 사도와 함께 복음을 위해 헌신할 사도가 되었습니다. 맛디아를 사도로 뽑은 후에도 사람들은 모여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와 충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며 인내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다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입니다. 그때까지 낙심하거나 포기하는 인내와 믿음의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순절 날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절에서 4절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신 후 열흘이 지나 오순절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에 사도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올라가 기도하던 다락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마치 불같은 혀들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나타나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모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또 성령 충만함으로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1절은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라고 합니다. 신약의 오순절은 구약의 칠칠절로 경건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머무르면서 밀과 보리로 떡을 만들어 제사했습니다.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라면 오순절은 성령 세례와 충만으로 인한 교회의 시작으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모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과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한 말은 하나님의 큰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하셨던 구원의 전 사역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한 구원의 역사, 즉 복음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지역과 인종을 초월하여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역사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자들은 갈릴리 사람이었기에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고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큰일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큰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 충만함을 주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큰일, 즉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능력입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능력을 받아야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어떤 의미입니까? 증인은 헬라어 μάρτυς(마르튀스)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건이나 사실들에 대한 법적 증인입니다. 이들은 법정에서 사실과 거짓, 죄와 의, 옳음과 그름을 증언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진리나 신념에 대한 증인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믿고 확신하는 것을 증언합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고 듣고 확신하는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바울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사도행전 20장 23절과 24절은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합니다. 바울은 유대 사람들의 음모로 시련도 많이 당했으나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겼습니다. 또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와 가정마다 방문하면서 복음을 가르쳐 왔습니다. 유대 사람들과 헬라 사람들 모두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강권하심 가운데 예루살렘에 가려고 계획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무슨 일을 당할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가 아는 것은 어떤 도시에 가든지 감옥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성령께서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서 주신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4장 31절은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합니다. 바울만 아니라 사도 베드로도, 순교의 제물로 자신을 드린 스데반도, 예루살렘교회의 집사였던 빌립도, 바울의 동역자도 모두 성령 충만하여 교회를 섬기며 복음의 증인으로 헌신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도 성령 충만하여 선교적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은 성령 충만에서 나옵니다. 은사를 받고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도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상황과 환경, 사람과 장소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며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사도행전에는 성령 충만을 받았던 사람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 무엇을 할 때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까? 첫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4장 31절은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10장 44절은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라고 합니다. 셋째, 영적 지도자의 안수를 받는 것입니다. 8장 17절은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고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지도자의 영적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세례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주신 선물이라며,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거룩한 수고와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이에 바울은 성령 충만을 명령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술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방탕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령 충만을 사모했으면 합니다. 성령 충만을 기대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지도자의 영적 지도를 통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며, 교회를 섬기는 자로 살며,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령 강림 주일을 보내며 성령 충만한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