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4) :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창세기 29:1-14 예화) 만남에 대한 염려와 기대 우리 자녀들이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하거나 신학기가 되면 학생들과 부모들에게는 염려와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가? 입니다. 왜냐하면 그 만남은 행복한 학교생활이나 학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 부모를 만나고 성장하면 친구를 만나고, 직장에서 동료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행복과 불행을 경험합니다. 제주극동방송의 식당에 들어가는 입구에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이루어지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이루어 진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기적을 경험하고, 사람을 만나 역사를 이룰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난다” 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방황을 멈추며, 우리 교회를 만나 신앙의 방황이 멈출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야곱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 하란으로 향하던 야곱에게도 매우 중요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만남이 주는 교훈을 통해 우리의 만남을 생각하며 은혜를 경험했으면 합니다. 야곱는 누구를 만났습니까? 그 만남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을 알고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란을 향해 가다 루스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잠을 자다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사닥다리가 하늘과 당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닥다리 위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그가 누워있는 땅을 주실 것이며 야곱과 자손들로 인해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지켜 주며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올 것이며,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고독하고 처량하고 두려운 길을 가고 있는 야곱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28장 16절은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라고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항상 자신과 함께 계시며 어디로 가든지 동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며 어디로 가든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고독함도 두려움도 사라지는 줄 믿습니다. 둘째, 헌신을 고백했습니다. 28장 22절은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고 합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그곳을 벧엘이라고 부르며 기동을 세우고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에게 일어난 것은 헌신의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날 때 헌신할 수 있습니다. 헌신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증거이며 거룩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 만나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며 동행하신다는 것을 믿고 신앙과 헌신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사람들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가는 길을 인도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1절은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라고 합니다. 야곱이 ‘길을 떠나’ 라는 뜻은 야곱이 ‘발을 들어 올리고’ 라는 뜻입니다. 이는 야곱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란을 향해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날 때에는 무거운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벧엘을 떠날 때에는 가벼운 발걸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 확신과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후에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세 무리의 양들이 누워있는 우물에 도착했습니다. 그 우물은 양 떼에게 물을 먹이기 위한 것으로 큰 돌로 아귀를 덮었다가 모든 양 떼가 모이면 돌을 옮겨 물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누구를 만났습니까? 첫째, 하란의 목자들을 만났습니다. 4절과 5절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고 합니다. 야곱은 목자들을 향해 어디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하란에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자신의 외삼촌인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라반을 잘 알고 있다고 했으며, 야곱의 라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나아가 목자들은 라반의 딸이 양을 몰고 그곳으로 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후에 야곱과 함께 양을 치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둘째,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났습니다. 9절은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고 합니다. 야곱이 목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라헬이 양떼를 이끌고 왔습니다. 이에 야곱은 라헬이 이끌고 온 양을 보고 우물 입구에 있는 돌을 옮겨 놓아 양들이 물을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야곱은 외사촌인 라헬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사로 볼에 입을 맞춘 것입니다. 그는 소리 내어 울면서 자신이 라반의 조카이며, 리브가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라헬은 야곱과 함께 인생을 함께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셋째, 외삼촌 라반을 만났습니다. 13절과 14절은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고 합니다. 딸 라헬로부터 조카 야곱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라반은 한달음에 달려와 환영하고 입을 맞추었으며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라반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라반은 야곱을 자신의 혈육으로 인정했습니다. 라반은 야곱의 외삼촌으로 한동안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만남을 통해 야곱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물곁에서 목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통해 라헬을 만났습니다. 라헬을 통해 라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을 만나 그가 가는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한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그들과 어떤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것을 알 때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대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하나님이 주신 만남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길 때 하나님을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영적인 만남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초로 성도들과의 만남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만남은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욕심과 교만으로 인해 성도들과의 만남을 훼손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아가 사람 때문에 하나님과의 만남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야곱의 인생에도 하나님이 주신 만남이 훼손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야곱의 잘못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야곱만 아니라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라반이 야곱을 속인 것입니다. 25절은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라고 합니다. 야곱은 라반의 딸 레아와 라헬 중에 라헬을 더 사랑해서 아내로 삼고자 했습니다. 라반은 라헬을 야곱의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속이고 먼저 레아를 주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14년 동안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일을 했습니다. 그 외에 라반이 열 번이나 야곱에게 줄 품삯을 속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둘째,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을 시기한 것입니다. 31장 1절과 2절은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고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이 아버지의 소유를 빼앗아 재물을 모았다고 오해하고 비난했습니다. 또한 라반의 얼굴을 보니 예전과 같이 자신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였으며 아들들의 시기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주신 만남을 훼손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야곱과 라반은 좋지 않은 모습으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라반과 야곱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과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소중한 만남과 관계가 불편하고 불행한 만남으로 변질이 되고 훼손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만남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던 사람들이 원수가 되고, 축복하던 사람들이 저주하는 사이가 되고, 칭찬하던 사람들이 비난하는 사이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과의 만남도 은혜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위해,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까지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의 만남은 축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의 만남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주셨습니다. 직장 동료를 주셨습니다. 학교 친구를 주셨습니다. 가까운 이웃을 주셨습니다. 교회 성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 만남이 우리의 거짓과 욕심으로 인해 상처와 아픔, 고난과 고통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만남이 우리의 인생과 신앙에 축복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남을 통해 행복한 가정생활, 학교생활, 직장 생활, 사회생활, 교회 생활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