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누가복음 22:39-46 예화) 하나님께 기도했더니(작자 미상)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것은 하나도 들어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은 모두 다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에 표현하지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글은 뉴욕대 부속병원 재활 센터 벽에 걸려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 이 글을 썼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는 힘과 건강과 부유와 성공과 많은 소유를 구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함과 질병과 가난과 실패와 삶 자체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을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기도에 대해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그것을 위해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거나, 거절을 경험한 것이 있습니까?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을 요구받으신 적이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의 침묵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과 신앙에 있어 내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일어나는 차이와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하신 감람산에서의 기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에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뜻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은혜와 교훈을 받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39절은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1.1Km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산의 서편 기슭을 겟세마네 동산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가신 것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습관은 자주 반복함으로 자연스럽게 몸에 익숙해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도 그곳에서 자주 기도하셨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결단이 필요할 때 습관을 따라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 40일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을 때 사람들이 왕으로 삼으려고 할 때 홀로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땀이 피가 되는 간절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생활은 어떠합니까? 우리에게도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습관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때로는 실패할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이 있기를 원합니다. 평소에도 기도할 뿐만 아니라 위기를 만났을 때 기도의 능력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40절과 46절은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러 가실 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들을 향해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유혹은 πειρασμός(페이라스모스)로 ‘시험, 시련’ 이라는 의미입니다. 46절의 시험도 같은 πειρασμός(페이라스모스)라는 단어입니다. 기도해야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유혹, 혹은 시험의 상황이나 환경에 처하지 않기 위해 기도할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3절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해, 악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유혹에 빠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시험에 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기도하는 성도들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기에 유혹에 빠졌습니다. 시험이 들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합니다. 악한 마귀와 죄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42절과 43절은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은 잔을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0절은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게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의 동기와 목적은 내 뜻을 이루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루는 것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내 뜻만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야고보서 4장 2절과 3절은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욕심을 내고 시기를 하고 악한 방법을 동원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은 정욕을 위해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루기 위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런 기도를 드리고 응답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신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발견하고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은 고난의 잔, 즉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발견하고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첫째,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시간이나 장소에서나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가전서 4장 3절과 7절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적인 죄악을 피하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부정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탁월한 윤리적인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듯은 기쁨과 기도와 감사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항상 슬퍼하며 기도하지 않으며 모든 일에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6절과 17절은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합니다. 베드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한 양심을 갖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는 위를 욕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해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선한 양심과 행실을 가지고 고난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영적 예배자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12장 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자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적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변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않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마음의 변화를 받고 세상에서 거룩한 자로 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항상 옳습니다. 이에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인생과 신앙의 중심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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