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전도서 4:7-12 예화) 삼겹살 삼겹살은 원래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은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말은 ‘두겹’ ‘ 세겹’이란 말을 쓰지만 ‘이겹’ ‘삼겹’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삼겹살’이 아니라 ‘세겹살’이라는 말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겹살이 보편화되면서 1994년 국어사전부터 등록되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삼겹살을 ‘비계와 살이 세겹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돼지고기’라고 합니다. 현재 삽겹살은 한국 사람이 가장 즐겨 먹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먹게 된 유래가 몇몇 있으나 가장 유력한 설은 ‘소주 가격 하락설’과 ‘슬레이트설’이라고 합니다. 1960년대에 소주 가격의 하락으로 서민들은 쉽게 술은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안주가 없었던 차에 비교적 싼 돼지고기를 찾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고소한 삼겹살을 안주로 삼아 상용화되었습니다. 또한 해방 이후 건설노동자들이 당시 쉽게 구할 수 있던 삼겹살을 건축 자재인 슬레이트에 구워 먹다 퍼진 것이 삼겹살의 유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소주 가격 하락설’이든 아니면 ‘슬레이트설’ 이든 중요한 것은 삼겹살은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삼겹살을 요즈음은 너무 가격이 올라 자주 먹을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오늘 점심은 남전도회원들이 고기국수를 준비했습니다. 돼지고기 삼겹살을 삶고 뼈를 울어내어 국물을 내었습니다. 모두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함께하시고 남전도회원들을 격려하고 축복해 주셨으면 합니다. 삼겹살을 고명으로 넣은 고기국수를 맛있게 드시고 세 겹줄이 주는 교훈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전도서는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가 인생의 말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행복과 불행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인생과 신앙생활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일반적으로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경쟁의식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열심히 수고합니다. 4절은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라고 합니다. 이 구절을 새번역 성경은 ‘온갖 노력과 성취는 바로 사람끼리 갖는 경쟁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이 수고도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고 합니다. 과도한 경쟁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이겨야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아야 하며 실수하고 실패하면 인생이 끝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평안과 안식이 없고 불안하고 걱정이 가득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과도한 경쟁을 하고 비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나친 경쟁의식을 소유한 사람은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윗이 백성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비교하고 경쟁했습니다. 그 결과 평생 다윗을 죽이기 위해 모든 권세와 시간과 힘을 쏟아부었으며 불행하게 삶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경쟁과 시기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에서 16절은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고 합니다. 야고보는 마음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이라고 합니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경쟁의식이 아니라 동역 의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도한 경쟁의식은 이기심과 욕심에 의해 파괴적인 관계를 만들어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동역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동역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빌립보서 4장 2절과 3절은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고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있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향해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경쟁함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기쁨이며 면류관인 사랑하고 사모하는 성도들을 향해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하나가 될 수 있게 도우라고 합니다. 복음을 위해 바울과 함께 힘을 쓰던 여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멍에를 같이 한 자, 즉 함께 거룩한 짐을 지고 헌신한 자를 향해 글레멘드와 바울의 동역자를 도우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 안에서 하나 되어 함께 동역할 것을 원하십니다. 복음을 위해 함께 힘을 쓸 것을 원하십니다. 서로 경쟁하며 시기하는 것은 불행한 인생을 살 뿐만 아니라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하나나 되어 교회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행복한 성도요, 행복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반면에 행복한 인생과 신앙생활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솔로몬은 행복한 인생과 신앙생활의 비밀을 세 겹줄을 통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세겹줄은 서로, 함께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서로는 1,000회, 함께는 860회가 나오며, 신약성경에는 서로는 100회, 함께는 127회 이상 니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낮에는 덥지만 해가 떨어진 밤에는 추운 곳입니다. 기온의 차가 크기에 많은 양의 이슬이 내려 생물이 성장하는 데 유익하기도 하지만, 기온 차가 크기에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밤이 되면 낮에 입고 있던 옷을 덮고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겉옷만으로는 밤의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친구와 함께 누워 안고 잠을 잤습니다. 그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 겹줄이 행복한 인생과 신앙생활에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함께 하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절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고 합니다.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나은 것은 그들이 힘을 합하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두 사람이 함께 수고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너지 효과는 1+1이 2 이상의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 반대는 링겔만 효과입니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동반자입니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동역자입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위해 함께 헌신하면 더 많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함께 하면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절은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험한 계곡과 광야가 많은 지형입니다. 그런 곳에서 길을 가다 보면 때로는 넘어지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때 함께 가던 사람이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 줄 수 있습니다. 인생은 거친 사막과 같은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순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길에 흔들리면 붙잡아 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격려하고 위해 줄 사람이 있기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함께 누우면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11절은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고 합니다.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서운 추위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누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는 것보다 둘이 함께 안고 있으면 따듯하게 밤을 새울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잠을 자다 소스라치게 놀라 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엄마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품어 줍니다. 그러면 놀란 마음에서 벗어나 평안한 마음으로 다시 잠을 잡니다. 그 엄마의 품이 마음을 따뜻하고 평안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프리허그라는 활동의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인생이 춥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외롭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 우리를 안아주면 마음과 영혼이 따뜻해지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안아주고 품어 주어야 할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안아주어 행복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함께 하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절은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고 합니다. 한 사람이면 실패하고 패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면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가장 먼저 아말렉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사람들을 이끌고 전쟁을 하는 동안 모세는 산에 올라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패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도 인간이기에 항상 손을 들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붙들어 주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많은 고난과 환난을 극복해야 합니다. 특히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 누군가 우리와 함께하면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악한 마귀와 세상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대화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떤 고난과 시험을 당할지라도 함께 신앙과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화) 선다싱 선다싱은 인도의 부유한 시크교도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복음 전도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 지역의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심한 눈보라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대 마침 한 사람을 만나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쯤 걸었을 때 한 노인이 눈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다싱은 함께 동행하는 사람에게 그 노인을 업고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을 업고 가면 둘 다 죽을 수 있으니 그냥 가자고 하며 혼자 떠났습니다. 노인을 업고 눈보라 속을 한 걸음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가버린 동행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인을 등에 업은 선다싱은 갈수록 힘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습니다. 얼마를 가자 선다싱의 몸은 땀으로 잦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몸에서 더운 기운이 발산되면서 차츰 등에 업힌 노인이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으로 조금도 춥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 한 사내가 꽁꽁 언 채로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시체를 살펴본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앞서가던 그 동행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행복한 인생, 행복한 신앙생활을 함께 하는 것에 있습니다. 함께 길을 걸어가면서 서로 격려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같이 눈물을 나누고, 아픔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아니 혼자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고, 지지하며 함께 가야 합니다. 좀 나를 포기하고 함께 하면 한 겹이 두 겹이 되고, 세 겹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넘어진 성도를 일으켜 세워 주고, 혼자라고 생각하는 성도를 안아주고, 연약한 성도와 함께 하는 교회를 세워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한 성도이며, 행복한 교회입니다. 그런 행복한 성도들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