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시리즈(5) : 승리의 확신 고린도전서 10:11-13 오늘은 확신 시리즈 다섯 번째 시간으로 승리의 확신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일반적인 시험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사물, 혹은 재능이나 자격을 점검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시험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고난과 역경과 상처 등에 적용하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겪는 시험에 대한 승리의 확신에 대해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성경에서 시험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신약성경에서 시험은 헬라어 πειράζω(페이라조) 로 ‘유혹, 또는 연단’ 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시험이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야고보서에는 시험이 주는 의미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 긍정적인 의미의 시험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과 3절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고 합니다. 야고보든 믿음의 형제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시험을 당할 때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험은 믿음의 시련, 즉 믿음을 연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며 온전하고 성숙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연단으로서의 시험은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한 축복이며 기회일 수 있습니다. 둘째, 부정적인 의미의 시험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과 15절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 합니다. 야고보는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신의 악한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욕심은 죄를 낳고 성장하여 사망을 낳게 된다고 합니다. 이 시험은 인간의 악한 욕심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죄를 범하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유혹으로서의 시험으로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며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혹으로서의 시험의 출처는 무엇입니까?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 욕심입니다. 욕심은 ἐπιθυμία(에피뒤미아)로 ‘육체의 정욕, 악한 욕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욕심은 단순이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고 합니다. 자기 욕심은 마귀의 욕심에 근원을 갖고 있습니다. 마귀는 미혹하는 자며 시험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유혹으로서 시험을 통해 죄를 범하게 하며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창세기 3장 4절과 5절은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고 합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 수 있게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이에 하와는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3장 6절은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고 합니다. 하와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를 보니 그 나무의 열매가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도 좋으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그 열매를 따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보기에 좋으며 먹음직스러우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고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유혹이라는 달콤한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범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혹시 악한 마귀가 여러분을 향해 선악과를 바라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먹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얻으면 축복이라고 유혹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악한 마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연단과 마귀의 유혹으로서의 시험을 분별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험이라는 단어, πειράζω(페이라조) 가 연단으로도, 유혹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연단과 유혹의 시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연단은 견딜 수 있게 하시며, 유혹은 이길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받을 때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시험을 이긴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 가장 많은 도전이 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야고보서 5장 11절은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고 합니다. 그는 우스 땅에 살고 있었으며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 욥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동방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시험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인내함으로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는 연단과 유혹의 시험에서 승리했습니다. 욥에게 일어난 시험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스바 사람들이 쳐들어와 종들을 칼로 죽이고 소와 양을 빼앗아 갔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양과 종들을 불로 살랐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낙타에게 달려들어 빼앗아갔습니다. 욥의 자녀들이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을 때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 집을 무너지게 만들어 모두 죽었습니다. 욥은 하루 만에 사랑하는 자식을 모두 잃어버렸으며 모든 소유를 빼앗긴 것입니다. 그것은 욥에게 있어 생각할 수 없는 시험이었으며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런 시험을 받으며 욥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욥기 1장 20절과 21절은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라고 합니다. 욥은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어미니 배에서 알몸으로 태어났는데 알몸으로 돌아가는 것을 당연한 것ㅇ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는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걷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찬양했습니다. 욥은 고난의 시험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 후에 다시 마귀가 욥을 시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욥기 2장 7절은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고 합니다.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났으며 재 가운데 앉아 깨어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굵었습니다. 이에 욥의 아내가 그를 향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면서 떠났습니다. 이에 욥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욥기 2장 10절은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고 합니다. 욥은 아내를 향해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면 화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면서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질병의 시험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욥이 큰 시험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을 듣고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욥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고난의 시험을 당하고 있는 욥을 위로하기보다 책망하고 비난하고 정죄했습니다. 그 때 욥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욥기 23장 10절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가는 길을 알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이에 시험을 통해 자신을 연단하심으로 순금 같아 질 것을 고백합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면서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시험을 받으면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에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하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욥은 시험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여기고 승리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시험에 대한 다른 반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난 시험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와 광야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시험을 만나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악을 즐기며 우상을 숭배하며 음행을 하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시험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시험에 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예배와 기도와 헌신을 자리를 떠납니다. 때로는 상처를 이유로 하나님의 교회를 떠납니다.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가까이 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을 떠납니다. 바울은 시험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에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시험을 당하면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연단으로서의 시험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으로서의 시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훈련에서 낙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연약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승리의 확신이 아니라 패배할 것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 승리의 확신을 갖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고보서 4장 7절은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고 합니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연단은 순종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유혹은 마귀를 대적하며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시험에 빠져 넘어지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시험을 통해 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시험이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연단을 견딜 수 있습니다. 유혹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질병과 고난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낙심과 절망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승리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합니다. 승리의 확신을 갖고 날마다 이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