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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항상 생각해야 합니다(벧후 1:12-19)2024-06-0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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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12-19

 

베드로후서는 로마의 네로 황제 말기인 AD 66년경에 베드로가 로마에서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록한 목적은 교회 안에 일어난 문제, 즉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경고하며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거룩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매우 중요하고 기초적인 것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성도들은 보배로운 믿음과 보배로운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보배로운 믿음과 약속을 주신 목적은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믿음의 기초 위에 말씀과 기도로 기둥을 세우고 건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를 더하며 사랑으로 완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실족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서론적으로 언급한 말씀입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로 거짓된 진리와 교훈을 극복하고 재림을 준비하며 소망 가운데 거룩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권면합니까?

12절은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미 있는 진리, 즉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 위에 서 있으나 영적 유혹이 있기에 계속해서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에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면서도 영적 성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성장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넘어지게 하며, 순전한 신앙을 왜곡하고 변질시키려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가 항상 온전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없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면 교만해지고 영적으로 안주하고 나태하여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베드로는 성도들이 항상 생각하라고 합니다. 생각은 헬라어 πομιμνήσκω(휘포밈네스코로) ‘생각하다. 깨닫다. 기억하다, 명심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생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생각과 마음과 행동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인지 상담이나 치료에서는 생각이 변하면 마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면 행동이 변한다고 합니다. 이는 감정과 행동의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생각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고방식이 변하면 생활 방식이 변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변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것은 사고방식의 변화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마음과 행동의 거룩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생각할 것을 기억하고 잊을 것을 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기억고 망각에 대한 오류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과거의 상처와 실패에 사로잡히면, 현재를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며, 미래에 대해 절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이것 누가 한 말인지 알고 있습니까? 제가 한 말입니다. 목회 현장에서, 많은 성도를 만나면서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며, 미래에 대해 낙심하고 절망하던 분 중에는 과거의 상처와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히브리서 812절은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실패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셔서 기억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서 하나님이 덮어주신 것을 헤집고 들추어내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상처와 실패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이에 더이상 이전의 죄와 상처와 실패로 인해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하고 깨닫고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11절은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때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때는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었던 때입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던 때입니다. 그래서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천국을 유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일을 위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영적 실상을 기억하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영적 전쟁에서 승리입니다.

히브리서 1032절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영적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고난과 유혹 속에서도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며 지금까지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그 영적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 받을 자가 아니라 영혼을 구원할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에 영적 담대함과 인내함을 가지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계속되는 악한 마귀와 세상의 유혹과 육체의 정욕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항상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까?

13절에서 15절은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합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깨닫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해야 할 말입니다. 반드시 죽음을 맞이할 것이기에 해야 하는 말입니다. 죽음 후에 자신 떠난 뒤에 생각나게 해야 하는 말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하는 말이 얼마나 간곡한 부탁이며, 가장 중요한 권면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유언적인 권면과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성도들에게 들려준 말은 우리가 들어야 할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기기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할 말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영적 경험입니다.

16절과 17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영적 경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경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태복음 171절에서 13절의 변화산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여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은 눈부시게 하얘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또한 하늘에서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으며, 구름 속에서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무엇으로 해석하고 있습니까?

16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변화산 사건을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 즉 부활과 재림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구원과 심판의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는 변화산에서의 경험을 통해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확신은 무엇에 있습니까?

우리는 영적 경험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영적 체험은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인한 은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열매입니다. 영적 체험이 신앙생활의 중심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체험, 즉 신앙적인 경험은 신앙생활에 있어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영적 체험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영적 체험을 가질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응답을 경험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지금도 성령 충만과 기도와 믿음과 말씀을 통해 영적 체험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영적 체험을 통해 확신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9절은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영적 체험보다 확신을 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은 확실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인이나 나라의 일을 미리 예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세상에 오셨으며 구원을 이루셨으며 재림하실 것입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는 문제는 재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미혹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가장 확신을 주는 것은 사람의 말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주의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날은 재림의 날을, 샛별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깊이 생각하고 배우고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시판 대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은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요즘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까? 기억하며 생활하고 있습니까? 살아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경험했던 소중한 영적 체험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영적 체험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살았으면 합니다. 보배로운 믿음과 약속을 받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