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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 2(벧후 1:5-7)2024-05-2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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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2)

베드로후서 1:5-7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과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정욕에 의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며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 여덟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그중에 지난번에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에 대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과 삶을 위탁하는 것입니다. 덕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건덕입니다. 지식은 하나님의 뜻과 건덕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절제는 감정과 욕구에 대한 자기 조절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닮아야 하는 하나님의 성품, 즉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에 관해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가 참여해야 할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다섯째, 인내입니다.

6절은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절제에 인내를 더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내는 πομονή(휘포모네)견고히 서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다는 뜻입니다. 이는 괴로움이나 어려움 같은 것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에이브러험 링컨은 인내는 고통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인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인내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야고보서 511절은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합니다. 욥은 인간적으로 견딜 수 없는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사랑하는 자식을 모두 잃었으며 소유를 빼앗겼습니다. 육체는 피부병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그의 곁에서 격려하고 위로해 주어야 할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악담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를 찾아온 친구들은 그의 고난과 고통을 이해하기보다는 충고하고 책망하며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며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욥의 인내를 인정하셨습니다. 인내하는 욥에게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내를 배우는 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어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인내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1412절과 13절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합니다. 성도들의 인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의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을 자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의 모든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도 인내함으로 말세에 미혹과 유혹이 있으며 도전을 받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킬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과 복종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경건입니다.

6절은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인내에 경건을 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건은 εσέβεια(유세베이아)거룩하고 삼가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 경외를 기본으로 하는 삶에 대한 태도입니다. 특히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경건한 고넬료는 어떠했습니까?

사도행전 102절은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합니다.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의 군대 백부장이었던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그의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이에 온 민족이 그를 칭찬했으며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와 가정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를 보내어 복음을 듣게 하셨으며, 성령 충만을 받고 구원을 받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경건한 고넬료를 하나님은 이방 선교의 출발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경건한 사람이 되어 경건한 자녀를 낳고 양육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넬료와 같은 경건한 사람, 경건한 가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고보는 경건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야고보서 126절과 27절은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합니다. 경경건은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경건한 삶은 무엇에 있습니까?

야고보는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기 혀를 재갈 물리는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어와 재물과 생활을 보면 경건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과 말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세속에 물들지 않는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며 세상 사람들을 감동을 주는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일곱째, 형제 우애입니다.

7절은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형제 우애는 φιλαδελφία(필라델피아)형제에 대한 사랑을 뜻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육신의 형제에 대한 사랑보다는 영적인 형제, 즉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하나님의 자녀들 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빌레몬은 어떠했습니까?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는데 재정적인 손해를 끼치고 도망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감옥에서 바울 만났으며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믿음의 아들이며 유익한 자이며 심복이라고 합니다. 그런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를 어떻게 대하라고 합니까?

빌레몬서 116절은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라고 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이제부터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의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 달라고 합니다. 자신에게도 소중한 오네시모는 주님을 믿는 형제로서 빌레몬에게 더욱더 소중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오네시모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받고 소중한 사람으로 여길 것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빌레몬은 바울을 형제와 같이, 아니 형제 이상을 사랑하며 섬기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제공했습니다. 이에 그로 인해 성도들의 마음은 평안함을 얻었으며, 바울은 그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빌레몬과 같이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여겨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하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형제를 어떻게 할 것을 권면합니까?

로마서 1210절과 12절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합니다.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먼저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또한 함께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인 형제 우애를 품을 때 함께 사랑하며 함께 존경하며 함께 섬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성도들을 사랑하며 함께 성장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덟째, 사랑입니다.

7절은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형제 우애가 φιλαδελφία(필라델피아)의 사랑이라면, 형제 우애에 더해야 하는 사랑은 γάπη(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이 아가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에 대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인간의 사랑인, 형제 우애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품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조건적이며 반응적입니다. 사랑할 만한 조건을 갖추어 있어야 하며, 반응에 영향을 받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할 만한 것이 없으면 사랑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사랑하는 것만큼만 사랑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으로서의 사랑은 어떠합니까?

마태복음 544절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로마서 1214절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언급하며 무엇을 처음과 나중에 두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믿음으로 시작하며 사랑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다서 120절과 21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유다도 믿음과 사랑을 통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건축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으면 합니다. 거룩한 믿음 위에 말씀과 기도로 세우며 사랑으로 완성하는 아름다운 영적인 집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