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들이 듣고 전한 기쁜 소식(1) 누가복음 2:1-7 예화) 남편도 이해했는데 지금 젊은 사람들은 잘 알 수 없는 코미디언 구봉서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장로였습니다. 그는 한국기독교 연예인선교단 회장을 맡아 오랫동안 봉사를 했습니다. 그는 온누리교회 고 하용조 목사와 함께 연예인교회를 세워 섬기기도 했습니다. 그가 연예인들을 전도하고 함께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복음서를 공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신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성경 공부 모임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때 구봉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 서방도 믿고 아내를 맞이했는데, 네가 왜 난리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즉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으며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할 수 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사건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내일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성탄절입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 탄생의 역사적 배경에 관해 나누고, 내일 성탄절에는 목자들이 듣고 전한 소식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출생하셨을 때의 배경은 어떠했습니까? 1절과 2절은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할 무렵에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 칙령은 로마 통치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은 호적 등록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실시된 첫 번째 호적 등록이었습니다. 그 당시 수리아는 B.C 64년에 로마에 합병이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유대는 A.D 70년까지 별도의 자체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지만, 수리아에 복속되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호적 등록은 인구 조사를 통해 세금을 부과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호적을 등록하려고했습니까? 3절과 4절은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라고 합니다. 인구 조사를 위한 호적 등록은 각 사람의 고향에서 실시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에 마리아와 정혼하고 있었던 요셉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고향 베들레헴에 올라가 호적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조상 다윗은 베들레헴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유대인들은 다윗의 동네라고 불렀습니다. 요셉이 호적을 하러 갈 때 마리아가 동행한 것은 이미 정혼한 사이었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가 잉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며 실상은 성경의 예언에 대한 성취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째, 베들레헴 탄생입니다. 미가서 5장 2절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고 합니다. 미가는 남유다의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로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작은 성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태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왕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입니다. 이는 모든 만물이 창조되기 전, 즉 영원 전부터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미가는 영원 전부터 계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합니다. 특히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것입니다. 미가의 예언은 어디에서 성취되어 나타났습니까? 마태복음 2장 1절은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라고 합니다. 헤롯 왕은 BC 37년에 유대 지역을 통치하는 분봉 왕으로 취임하고 B.C 4년에 여리고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유대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과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등록에 대한 칙령과 호적으로 하기 위해 나사렛에서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올라가는 것을 통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한 철저하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성취로 인한 것입니다. 세상에 우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루어지는 필연입니다. 우리가 믿고 구원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의 성취로 오신 만왕의 왕이시며 영원한 생명입니다. 둘째, 동정녀 탄생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은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친히 징조를 보여주실 것인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을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뜻인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성취는 어디에 나타났습니까? 마태복음 1장 23절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합니다. 나사렛의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을 했지만, 같이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정혼자 마리아에게 수치를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은 자기 백성들의 죄에서 구원할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것의 성취라고 하셨습니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천사가 말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사실 성령으로 마리아가 잉태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은 인간의 상식과 과학으로 이해하고 수용하기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못하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 즉 신앙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능력에 대한 확신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 중에도 믿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가 성령으로 잉태되고 구원자가 나신 것을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며 허구가 아니라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셨으며, 그 예언의 성취가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가? 믿지 못하는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가? 아닌가? 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 예수님의 존재도 동정녀 탄생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즈음 TV나 SNS 글에 종종 예수님의 탄생일, 즉 성탄절이 12월 25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존재와 탄생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 이단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교회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된 것은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A.D 336년에 예수님의 탄생일로 삼아 그리스도인의 축제일로 삼았습니다. A.D 350년에 교황 율리우스 1세가 예수님의 생일로 공식 선언했습니다. A.D 354년에 로마 교회 감독 리베리우스가 교회 절기로 제정했습니다. A.D 379년에 서방교회가 지키고 확장되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현재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서방교회는 12월 25일,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동방 교회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12월 25일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구원에 있어 절대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골로새서 2장 16절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 어떤 날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 하는 것으로 인한 비판을 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느냐? 아니야 ?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지키면서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치와 의미입니다. 예화) 중앙일보 백종호 종교전문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누군가 물었습니다. “12월 25일이 정말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인가요?” 맞은 편에 앉은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짜보다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더 중요합니다.” 전에 똑같은 질문을 받은 사랑의교회를 시무한 고(故) 옥한흠 목사는 “성탄의 날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오심의 의미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신 날. 이게 성탄절의 키포인트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마태복음 20장 28절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 섬김의 절정은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을 죄에서 구속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시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말구유와 십자가, 이 둘이 우리에게 삶의 기준을 제시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베들레헴 말 구유에 태어나심으로 시작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치셨습니다. 그 말구유와 십자가를 이으면 예수님의 생애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인생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로 살았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자기를 비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과 같이 되었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겸손과 복종과 희생이 있는 삶을 결단하는 성탄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