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 바른 복음 갈라디아 1:6-10 예화) 나는 신이다 지난 2023년 3월 3일에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현대사 속의 ‘메시아’들과 이들 뒤에 숨은 사건과 사람을 추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명석의 ‘기독교복음선교회(JMS)’, 박순자의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김기순의 ‘아가동산’, 이재록의 ‘만민중앙교회’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바른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에 미혹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화면에 있는 사진은 ‘영원한 복음’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한 에녹이 쓴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 계산법을 주장하며 종말을 예언했습니다. 1948년은 이스라엘의 독립, 1978년은 아마겟돈 전쟁, 2023년은 에덴 회복으로 종말입니다. 그의 연대 계산법은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을 예언하는 이단들과 정명석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 에녹은 영원한 복음에 관해 썼지만, 그것은 바른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었습니다. 아니 복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에 관해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은 관심과 가치입니다. 복음을 위탁받았습니다.담대히 복음을 전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관심과 가치를 갖고 위탁받고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가? 에 관해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갈라디아교회에 있었던 다른 복음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언급하며 바른 복음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신학이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바른 복음을 이해하고 다른 복음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체험한 갈라디아교회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인들의 영향을 받은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복음만 아니라 율법에 있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복음과 율법에 대한 혼돈으로 교회는 혼란스러워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무엇이라고 합니까? 6절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고 합니다. 바울은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그들을 부르시고 구원을 하셨는데, 그렇게 빨리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성도들을 바울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의 교인들만 아니라 현대 그리스도인 중에도 바울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바른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전하며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따르면 결국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에 미치는 중요한 영향은 복음에 대한 이해와 믿음에 있습니다. 이에 다른 복음을 분별하고 바른 복음을 알고 믿을 수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바른 복음은 무엇입니까? 4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라고 합니다. 바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돌아가심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뜻이나 공로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풍속을 따라 살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지금 불순종하는 아들들 가운데 활동하고 있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때는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행하며 육체의 욕망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이 크신 사랑으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인해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 구원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이 바른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믿으십니까? 사도행전 4장 12절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합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종종 다른 복음을 따라 바른 복음을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혹시 바울이 이상하게 생각했던 일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유혹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그것으로 인해 혹시 갈등하거나 혼란스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다른 복음에 대한 분별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바른 복음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복음은 무엇입니까? 2장 16절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사람도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다른 복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믿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절과 5절은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행 15:1, 5)고 합니다. 율법을 따라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행위를 통한 구원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식이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서의 인간의 실상을 깨닫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율법은 거울과 같아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현대 교회에서도 바른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위협적인 것은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도 구원을 얻을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영지주의와 신비주의입니다. 이들은 특별한 깨달음을 얻어야 하거나, 특정한 교회에 다녀야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았다는 특별한 깨달음은 비성경적인 것이며, 그들의 교회는 다른 복음을 주장하는 곳입니다. 이들이 전하고 따르는 것은 다른 복음에 불과합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언급합니다. 7절은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장하고 있는 악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다른 복음이 온전한 복음인 줄 알고 따라갔다가 모든 것을 잃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영원한 구원과 안식과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사망과 불안과 불행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이 주는 부정적인 결과를 ‘교란’과 ‘변질’이라는 단어를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교란입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라고 합니다. 교란은 ‘ταράασσω’(타랏소)로 ‘흔들어 혼란스럽게 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복음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흔들어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교회를 흔들어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이 있는 곳에 갈등과 분열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만히 들어와 영혼을 노략질합니다. 둘째, 변질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변하게’는 ‘μετστρέψω’(메타스트레포)로 변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은 바른 복음을 변질시킬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다른 복음을 따르면 반드시 신앙의 변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종종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 중에 신앙과 헌신과 삶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복음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바른 복음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바른 복음을 따르면 반드시 바른 신앙과 삶을 살게 됩니다. 바른 복음을 따르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희생적인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복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신앙과 삶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갈등과 분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희생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지 않으며, 온전히 헌신하지 않는 것은 바른 복음을 따르는 성도들의 삶이 아닙니다. 바른 복음을 따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어떻게 됩니까? 8절과 9절은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일지라도, 그 누구일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며 저주를 받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부인하거나 부정하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경계하며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복음에 대한 분별력입니다. 우리는 다른 복음이 아니라 바른 복음을 믿고 전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다른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10절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다른 복음은 사람 중심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기쁨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반면에 바른 복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다른 복음에 미혹을 받지 않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바른 복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바른 복음을 듣고 알아야 합니다. 바른 복음을 믿고 전해야 합니다. 바른 복음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복음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시대에 바른 복음에 대한 영적 분별력을 갖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