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원(4) : 헌신 시편 110:3 예화) 깨어진 그릇 깨어진 그릇이라는 간증 책을 쓴 김태훈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시절 복음을 깊이 깨닫고 선교적 부르심의 소망을 키워왔습니다. 간담췌외과·소아외과 의사로 촉망받던 미래를 내려놓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즈음, 본격적인 사역을 앞두고 파킨슨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외과 의사로서 사망선고와 같은 진단을 받고 스스로 깨어진 그릇, 찢어진 그물처럼 느껴져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에게 주님은, “네 깨어짐 때문에 너를 택했고, 전부를 드린 네 마음을 받았으니 가던 발걸음을 계속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에티오피아를 사랑하며 그 땅을 위해 전적인 헌신의 삶을 사는 그는, 깨어진 그릇 같은 연약한 우리 인생도 하나님 손에 들리면 귀히 쓰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방글라데시와 남수단을 거쳐 에티오피아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이자 국제 보건의료 전문가로 헌신적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부담스럽게 느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효도와 헌신입니다. 자녀로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헌신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매우 부담스러운 말로 다가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생명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성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자로 사는 데 필요한 것이 헌신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자로 살기 위한 헌신에 대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헌신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들어가셨을 때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은 마리아입니다. 그 가격은 삼백 데나리온으로 노동자 일년치 품삯입니다. 그것은 매우 많은 액수입니다. 한편 다른 사람도 생각이 납니다. 그는 마리아의 헌신을 보고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허비하는 것이라고 했던 가룟 유다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자신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헌신은 낭비가 아닙니다. 허비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헌신을 할 수 있습니까? 헌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자가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헌신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헌신은 어떠합니까? 더 많은 헌신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까? 헌신의 자리에 계속 머무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헌신에 대한 열망도 사라지고 헌신의 자리를 떠나 있습니까? 거룩한 열망을 갖고 헌신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헌신은 무엇입니까? 첫째, 헌신은 섬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되며, 한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가볍게 생각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섬긴다’는 것은 δουλεύω(둘류오) 로 ‘종이 되다. 예속되다’ 는 뜻입니다. 헌신은 자기의 생각과 마음대로가 아니라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신하는 데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는 재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더 많이 얻으려다가 진실한 믿음에서 떠나고, 오히려 더 큰 근심과 고통만 당하게 됩니다.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섬길 때 헌신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둘째, 헌신은 드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과 8절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바울은 복을 위한 연보를 하는 데 있어 각자 마음에 작정한 대로 드리고 아까워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해서 모든 선한 일을 넘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진정한 헌신은 즐겨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헌신은 자신에게 있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아낌이 없이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데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인색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아낌없이 드리는 자가 헌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헌신은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7절과 8절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합니다. 바울은 구원을 받은 자들은 누구든지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없고 자기만을 위해 죽는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습니다. 왜냐하면 죽든지 살든지 모두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신의 핵심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았습니다. 죽어도 주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살고 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 죽느냐? 에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이 생과 사를 초월하는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헌신에 대해 무엇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헌신해야 합니까? 로마서 12장 11절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합니다. 바울은 주를 위한 헌신을 위해 세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모두는 헌신을 위한 태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지런해야 합니다. 이는 헬라어 σπουδή(스푸네) 로 ‘서두르다, 재촉하다’는 뜻입니다. 언제 헌신해야 합니까? 다음으로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종종 중년의 시기에 신앙생활을 하게 된 분들의 고백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좀 더 일찍 신앙생활을 하지 못함에 대해 안타까움을 고백합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보다 더 건강했을 때, 더 돈이 많았을 때, 더 시간이 있었을 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하지만 아직 늦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헌신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헬라어 ὀκνηρός(오크네로스)로 ‘주저하다, 싫증나다’ 는 뜻입니다. 헌신은 어떤 상황이나 상황에서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헌신이 우리의 감정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로 인해 시험이나 상처를 받거나 환경과 상황이 변하면 헌신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변해도, 상처나 시험을 받을지라도 헌신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전히 헌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킬 수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이는 헬라어 ζέω(제오) 로 ‘끓다, 타오르다’ 는 뜻입니다. 헌신은 거룩한 열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주를 향한 헌신이 없다면 하나님을 향한 열정, 혹은 열심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복음과 교회를 생각하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헌신은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뛸 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이 뛰고 마음이 뜨거워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열심을 품고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헌신이라는 단어와 함께 있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한글 개역 개정 성경에서 헌신이라는 단어는 출 32장 29절, 사사기 5장 2절과 9절, 시편 110편 3절로 네 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 세 번이 ‘즐거이’와 ‘헌신’이 함께 나옵니다. 사사기 5장 2절과 9절은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고 합니다. 여사사 드보라가 가나안의 야빈과 전쟁할 때 지도자들이 용감하게 앞장을 섰으며 백성들은 즐겁게 헌신했습니다. 드보라가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사모한 것은 백성 가운데 즐겁게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사 드보라와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한 결과였습니다. 시편 110편 3절은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의 날에 주의 백성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겁게 헌신할 것입니다. 그 백성들은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입니다. 이는 어떤 마음으로 헌신할 것인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의한 헌신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즐겁고 기쁘게 해야 합니다. 그런 헌신을 하나님도 기뻐하시며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예화) 하워드 A 켈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하워드 A 켈리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날 밤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습니다. “주님, 내 자신과 나의 시간과 나의 능력과 나의 열정,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하오니 나를 정결케 하시고 제가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세상에서의 어떠한 성공이라도 제게 허락하지 마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헌신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위한 헌신을 위해 요구되는 것은 시간과 재물과 몸입니다. 시간을 위한 헌신은 주일 성수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선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재물의 헌신은 십일조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고백하며 구별하여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몸의 헌신은 하나님을 위해 우리의 모든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봉사의 현장에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재물과 몸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자로 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헌신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헌신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헌신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감사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헌신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