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과 경주를 마치면서 디모데후서 4:6-8 예화) 할머니의 유언 종종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유언을 듣고 인생의 전환을 이룬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TV조선의 미스터 트롯에서 4위를 했던 김호중입니다. 그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청소년기에 방황하며 보냈습니다. 싸움하기 위해 울산에서 부산까지 원정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의 인생을 바꾸게 만든 것은 항상 곁에서 돌보아 주던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했던 유언이었습니다. 그 유언은 “항상 어른들 만나면 인사 잘하고, 싸우지 말고, 남들에게 박수받는 사람이 되라” 는 말씀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유언은 그의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가 언제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유튜브를 검색하면 김호중이 부른 찬양이 많이 있습니다. 유언은 무엇입니까? 사전적 의미는 ‘죽음에 이르러 부탁하여 말을 남김. 또는 그 말’입니다. 이는 이 세상을 떠날 것을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남기는 부탁입니다. 유언이 다른 말보다 더 많은 영향과 감동을 주는 것은 간절함과 진실함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언을 듣는 사람은 그 어떤 말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 듣고 지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요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하는 유언적인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권면은 그들만 아니라 우리가 듣고 지켜야 할 말씀입니다. 그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권면이 주는 교훈과 권면을 통해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과 죽음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6절은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라고 합니다. 바울은 신앙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과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인생과 죽음은 어떠합니까? 첫째, 전제로 부어드렸습니다. 그는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라고 합니다. 전제는 포도주 등을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에 붓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헌신적인 봉사, 주를 위해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거룩한 희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전제와 같이 벌써 부어졌다고 합니다. 이는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모두 드렸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7절과 18절은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라고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자신을 전제로 드리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이에 그들을 향해 전제로 드리는 것을 함께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생인 줄 믿습니다. 둘째, 떠날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합니다. 바울이 이 땅에서의 생명이 끝날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디모데를 비롯한 성도들과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2절과 13절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고 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순종의 삶을 통해 죽음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한 자의 죽음은 거룩한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수고를 그치고 안식의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최선을 다해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믿음과 순종을 통해 죽음을 준비했으면 합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희생과 헌신,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떤 자로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합니까? 7절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생애를 돌아보며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생과 신앙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영적 군사입니다. 그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라고 합니다. 이는 바울이 영적 군사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합니다. 영적 전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전쟁의 대상이 누구인가? 를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아니라 악한 마귀요, 그를 따르는 권세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영적 전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악한 마귀와 세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영적 군사로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으며 성령 충만함으로 믿음과 기도와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영적 경주자입니다 그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고 합니다. 바울은 영적 경주자로서 믿음의 경주에서 끝까지 달렸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6절과 27절은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를 향해 달려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바라보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그는 마지막 날에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최선을 다해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갖고 세상을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영적 군사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과 4절은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군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 고난은 환난과 역경이라기보다는 불편함과 고통입니다. 왜냐하면 영적 군사로 영적 전쟁에 임하기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하며, 그 훈련의 과정은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 군사로 모집한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적 훈련의 과정과 영적 전쟁을 통해 겪는 불편함과 고통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그 불편함과 고통을 영적 성장과 강건을 위한 과정으로 여기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영적 경주자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5절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라고 합니다. 영적 경주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방식을 따라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달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빨리 달릴지라도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생각과 방식을 버리고 인내하며 영적 경주에 완주하는 자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라고 합니다. 우리가 영적 경주를 마치는 결승점에 들어갈 때 구름과 같이 많은 증인들이 환호하며 맞이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영적 경주를 하기에 방해가 되는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달려야 합니다. 그 영적 경주는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영적 군사요 경주자로 살면서 확신한 것은 무엇입니까? 8절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영적인 군사요, 영적 경주자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영적 경주를 완주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무엇을 기대하고 확신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라고 합니다. 본래 면류관은 승리자에게 씌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모든 전쟁과 경주에서 승리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특히 의의 면류관이라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살아간 성도들에게 주는 영생과 상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의 면류관을 누가 받을 수 있다고 합니까? 그는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만 아니라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고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재림하시는 예수님께서 오늘도 믿음으로 영적 전쟁을 하며, 영적 경주를 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믿음으로 영적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영적 군사와 영적 경주자로 마치면서 바울의 마지막 유언을 마음에 깊이 새겼으면 합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최선을 다해 희생하고 헌신했으며,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았음을 고백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영적 군사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적 경주자로 경주를 마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고 계신 의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바울의 유언을 통해 우리의 인생과 신앙을 회고했으면 합니다. 우리의 인생과 신앙에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후배들에게 귀한 유언을 할 수 있는 신앙생활과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