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시편 128:1-6 오늘은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을 함께 지키는 가정주일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최초로 만드신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하와를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후손을 주셨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경험하고 나누는 곳입니다. 그런데 악한 마귀의 유혹에 넘어져 행복을 잃어버린 가정이 되었습니다. 아담의 가정을 무너지게 했던 마귀는 지금도 우리의 가정을 무너트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래리 발라드는 ‘가족,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 책에서 ‘가정은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기 가장 힘든 곳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정 주일을 지키며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 축복하시는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에 대한 거룩한 소망을 갖고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시편 128편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가정에 대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복은 히브리어 אֶשֶׁר(에셰르) 로 ‘하나님이 주시는 번영, 행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는 번영과 행복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단순히 소유나 환경이나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있는 줄 믿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까? 어떤 가정이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1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인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대적하는 악한 마귀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행복한 삶은 하나님의 뜻이며 소원입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간절한 소망과 기도는 자녀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에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그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1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복이 있도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경외는 יָרֵא(야레)로 ‘공경하다. 두려워하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두려워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기독교 상담가인 폴 트립은 『경외』라는 책에서 우리의 뒤틀려버린 삶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을 회복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외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섬기느냐?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하는 것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무엇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거룩하게 사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일어난 불행은 무엇으로 인한 것입니까? 창세기 3장 5절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고 합니다. 마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하와는 그 열매를 먹고 남편 아담에게 주워 먹게 했습니다. 그들이 범한 핵심적인 죄는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되었을 때 에덴의 행복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은 우리에게 불행을, 신앙은 행복을 주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온전한 신앙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1절은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라고 합니다. 길은 דֶּרֶךְ(데레크) 로 ‘도로, 방식’을 말합니다. 또한 걷는다는 것은 ‘가고 오다. 생활하다’ 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길을 걷는 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생활방식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생활방식을 살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종종 그런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활방식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7장 13절과 14절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문이며, 그 길은 비좁고 험한 길입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았습니다. 죄를 ἀμαρτία(하마르티아) 라고 합니다. 이는 길에서 벗어난 탈선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벗어나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죄입니다. 그 죄는 우리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로 인해 에덴동산의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행복을 잃어버리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이 되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생활방식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행복을 찾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행복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며 행복의 길을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있는 복은 무엇입니까? 첫째, 수고의 열매입니다. 2절은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수고하지 않고 열매를 거두는 삶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손으로 수고하고 열매를 거두는 데 있습니다. 이는 손으로 수고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고하면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일하고 풍성한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바벨론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유브라데 강 서쪽 총독들의 반대에 성전 재건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성전을 재건할 수 있는 상황과 환경에 되었지만 자신들의 집을 세우는 일에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의 집을 세우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학개 1장 6절은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씨를 뿌렸지만 수확이 적었습니다. 많이 먹었지만 배부르지 않았습니다. 많이 마실지라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일꾼이 품삯을 벌어도 구멍이 뚫어진 주머니에 넣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헌신을 잃어버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고의 열매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먹고 마셔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것을 벌어도 손으로 물을 움켜잡았을 때 빠져나가는 것처럼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수고할 수 있는 건강과 일터가 있는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수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손으로 수고한 대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형통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축복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가정의 행복입니다. 3절과 4절은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라고 합니다. 시편 기자는 가정의 행복에 대해 아내는 열매 맺는 포도나무와 같을 것입니다. 식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감람나무의 새싹들과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로 비유하는 것은 출산과 양육의 능력에 대한 비유입니다. 잠언 31장 10절은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고 합니다. 현숙한 여인은 진주보다 더 귀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집안 일을 잘 보살피고 게을리 얻는 음식을 먹지 않기에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남편의 칭찬을 받습니다. 그런 아내와 어머니가 있는 가정은 행복입니다. 또한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을 어린 감람나무로 비유하는 것은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람나무에서 올리브유라는 기름을 짜서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습니다. 또한 집안을 밝히는 등불의 기름으로도 사용했습니다. 감람나무는 한 번 베면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자라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감람나무 같다는 것은 생명력을 갖고 고난과 실패에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흑암과 같은 세상을 밝히는 빛과 같이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부모가 있는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한 기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식탁에 앉아 수고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부모는 자녀들을, 자녀는 부모님을 축복하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그런 가정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가족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영적인 번영입니다. 5절과 6절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라고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실 것을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에 있어 시온은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는 거룩한 산이며 하나님의 처소로 불렸습니다. 또한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볼 것을 축복합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이 언약궤를 옮기고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하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곳입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 가운데 부어지는 은총입니다. 특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리 가정의 행복은 교회의 행복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가정의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복 중의 복은 우리 가정이 평생토록 성전에서 흘러넘치는 복을 누리고, 나아가 자식의 자식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복을 받고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런 가정과 교회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 세우신 곳입니다. 가족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가정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말씀을 중심으로 사는 가족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가정을 세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수고의 열매를 먹으며, 가족의 행복을 경험하며, 영적인 번영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와 행복과 번영이 충만한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