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진보를 이루라 사도행전 17:10-15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날마다 믿음이 진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정체하고 침체되고 있습니까? 혹시 퇴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에 전심전력을 다 해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야 합니다. 믿음의 진보는 더 나은 신앙생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예배의 진보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예배의 진보는 지금보다 더 나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더 온전한 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침체와 암흑기에 나타난 현상은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헛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차라리 하나님의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더 나은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더 나은 신앙생활을 위해 말씀의 진보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말씀의 진보는 성경에 대한 태도와 반응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의 진보가 일어나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갖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자주 환경과 상황에 흔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신앙과 생활의 기초와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앙과 불순종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영적인 양식입니다. 영적인 신호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떡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가라 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서고, 기다리라 하면 기다려야 합니다. 종종 우리의 인생길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인간적인 생각과 마음과 경험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더 나은 태도와 반응이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울과 실라가 강론한 말씀에 대한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와 반응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어 3주 동안 안식일에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가르치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바울이 그들에게 전하는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것을 전하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로 인해 경건한 헬라의 많은 사람과 귀부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시기하여 시장에서 불량배들을 모아 폭동을 일으켜 도시를 혼란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군중 앞으로 끌어내려고 야손의 집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하자 야손과 다른 형제 몇 사람을 마을의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예수를 왕이라고 하여 황제의 명령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후에 관원들은 야손과 다른 신자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 풀어 주었습니다. 이에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했습니까? 10절은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밤에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에서도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데살로니가에서 성경을 강론하다 죽음의 위협을 받았었습니다. 그럼에도 베뢰아에서 성경을 강론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하고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우리의 사명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베뢰아에서 성경을 강론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1절과 12절은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라고 합니다. 첫째,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웠습니다. ‘너그럽다’ 는 헬라어 εὐγένης(유게네스) 로 ‘마음이 고상하다, 마음이 넓다’ 는 뜻입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강론하는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이는 간절히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언제 말씀의 진보가 일어납니까? 마음을 열고 간절함으로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육신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귀가 열리고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함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상고하다’ 는 헬라어 ἀνακρίνω(아나크리노) 로 ‘조사하다, 연구하다’ 는 뜻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바울이 가르치고 전한 성경이 사실인지 살피고 배우고 연구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고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에 성경을 배우고 연구하면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영생을 얻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성경을 날마다 상고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더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경을 상고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바울과 실라가 가르치고 전한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성경을 연구한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또한 많은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찾아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이에 믿음의 형제들이 바울을 아덴으로 안전하게 피신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반응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부하고 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믿어야 합니다. 또한 날마다 성경을 배우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도 성장하고 온전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더 나은 태도와 반응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말씀의 진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생각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더 나은 태도와 반응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요한계시록 1장 3절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와 반응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읽는 것과 듣는 것과 지키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3장 3절과 4절은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고 합니다. 바울은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계시를 통해 알게 된 비밀을 교회에 보내어 읽게 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울이 교회에 보낸 편지, 즉 성경을 읽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해할 수 없기에 읽는 것을 포기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이해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삼주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성경을 평일에 세 장, 주일에 다섯 장을 읽으면 일 년에 성경을 한번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성경을 두 번 읽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넣어드린 자료를 참고로 구약 11권과 신약 3권을 통해 역사적 구조의 관점에서 읽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반기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를 읽을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조명을 간구하고 의지하며 성경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22장 21절은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한 습관이 어려서부터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말씀하시며 들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들으라’는 히브리어로 שָׁמַע(샤마, 쉐마) 입니다. 그것은 ‘경청하다, 이해하다’ 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잘 들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오해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상대방이 하는 말을 경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른 생각을 하고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면 잘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해하고 소중한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씀을 듣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며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을 해석하여 선포하는 설교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경청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까? 적극적 경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메모를 할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 경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판단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반응적 경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할 때 백성들은 일어서서 손을 들고 아멘으로 화답을 했으며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이해하고 믿음이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신명기 4장 2절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명령하시는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듣는 것에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의 진보입니다. 말씀에 대한 더 나은 태됴요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제사보다 순종을 더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말씀에 대한 순종은 신앙과 사랑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순종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진보가 있기를 원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배우고 연구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킬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진보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