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I : 하나님께 돌아오라(Return) 이사야 55:6-13 지난 주일에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집사님 한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사셨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고향교회 선배를 제주에서 만난 것입니다. 감리교 충청지방 장로부부 세미나 참석을 위해 오셔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큰 목소리와 손 짓, 거침 입담과 성격은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변했습니다. 종종 전화 통화를 할 때도 느꼈지만 하나님과 교회 사랑을 더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대형버스가 필요할 때 대형면허를 취득해서 10년 이상 운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집까지 8Km가 되는 데 매일 나와 새벽마다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을 만나면서 하나님을 더 많이 생각하고 기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R-I, ‘Remember’ ‘하나님을 기억하라’에 이어 R-II, ‘Return’ ‘하나님께 돌아오라’ 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돌아오라’ 는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서울 1호선 전철 신도림역입니다. 신도림역은 전철 1호선이 안양방면과 인천방면으로 나누어지는 역입니다. 그래서 안양행이 아니라 인천행을 타면 신도림에서 내려 바꾸어 타야 했습니다. 반대로 인천방면을 가야 하는데 안양행을 타면 신도림역에서 인천행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면 신도림을 지나 칠 때가 있습니다. 인천방면에 대한 방송을 들으면 급하게 내려야 하고, 혹시 방송을 듣지 못하면 구로나 가리봉역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잠을 자다가 안양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방향을 잘못 선택하기도 합니다. 또한 잘못 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신앙의 위치와 방향을 점검했으면 합니다. 만약 잘못된 위치에 있거나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혹은 돌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성경에서 ‘돌아오다’ 혹은 ‘돌아가다’ 는 단어는 슈브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약 1,000번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회개의 과정에서 있어 사람의 행위와 책임을 표현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라’ 혹은 ‘하나님께 돌아가라’ 는 것은 회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으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단회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즉 신앙의 대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하고 믿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다음은 반복적인 것으로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하기에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민감함을 통해 죄를 발견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 회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며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죄를 범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다’ 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거리에 대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공간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있습니다. 공간적인 것은 실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예배하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전도하는 것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심리적인 것은 그런 것들을 하지만 온전함과 진실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종종 신앙생활의 공간적인 것만 하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적인 거리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헌신의 열정과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때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6절은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시간과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은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구원 받을 기회가 있었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바로 지금이 은혜를 받을 만한 때입니다. 구원 받을 기회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바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에 대해 귀한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7절은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고 합니다. 누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까? 악인입니다. 악인은 사악한 사람으로 고의로 죄를 범하는 사람입니다. 불의한 사람입니다. 불의한 사람은 거짓된 사람으로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악인은 죄를 범하는 자로, 불의한 사람은 우상숭배자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는 사람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또한 일상에서 죄를 범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습니까? 우상을 섬기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잠시 멈추어 서서 신앙과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 원하는 길로 가고 있는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악인과 불의한 자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8절과 9절은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길과 하나님의 길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범하는 것은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3장 4절은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고 합니다. 죄는 불법입니다. 불법은 ‘아노미아' 라고 합니다. ‘아노미아’는 법이 없다는 무법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불법을 법은 어기는 것이며, 무법은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법은 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떠나는 죄악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 생각과 길을 하나님의 생각과 길에 맞추어 보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내 길이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이 내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사막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막 길을 가는 것은 백성들의 생각에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백성들이 원하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생각과 계획이 아니었던 사막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신명기 8장 2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과야 사막의 길을 가게 하신 것은 그들을 겸손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갔던 광야 사막의 길은 하나님의 생각에 바른 길이었습니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그 생각과 길이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입니까? 혹시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진 것은 아닙니까? 내 생각과 내가 원하는 신앙과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어떤 일이 있습니까? 첫째, 용서를 받습니다. 7절은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우리는 탕자의 이야기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록 허랑방탕하게 생활하다가 모든 재산을 탕진했지만,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돌아오자 반갑게 맞이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맞아 주시고 반겨주시고 안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축복을 받습니다. 12절과 13절은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헛된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를 용서하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양식을 풍성히 먹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는 탕자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반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기고 양을 잡아 잔치를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의 자리를, 말씀의 자리를, 기도의 자리를, 전도의 자리를, 헌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까? 그 자리를 떠나 세상 속에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떠나 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영적인 위치와 거리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을 떠나 있다면 하나님께 돌아오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을 떠났거나 멀어진 이유는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유혹에 끌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상처를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확신이 없어서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떠나고 멀리하는 것의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작은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가까이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지금 하나님과 영적 관계와 거리를 점검하고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오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데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