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할 때가 있습니다(2) 마태복음 25:19-23 예화) 지금 해야 하는 일 교회를 위한 헌신의 마음이 불타고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재정도 부족하고, 기회와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슬퍼하며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신세를 호소하면서, 헌신의 길이 열리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딸이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망가진 인형을 고쳐달라고 졸랐습니다. 기도하는데 방해하는 일이 못마땅하여 딸을 꾸짖어 보냈습니다. 기도를 끝나고 보니 어린 딸은 망가진 인형을 안은 채 흐느끼다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딸의 뺨에 나 있는 선명한 눈물 자국을 볼 때 성령의 감동과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지금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등한시하면서 큰일만을 구하느냐?” 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더 많은 일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한 달란트 받은 종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오늘 송구영신 예배에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에 대해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 종들이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며 칭찬을 받는 종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종이 되기를 소망하며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는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은 주인을 매우 포악하고 거칠고 악한 사람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매우 질이 나쁜 구두쇠나 돈을 모으는 데는 광적이면서 인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동력을 착취해 소득을 얻는 파렴치한 인물로 알았습니다. 이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두려워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두었다가 한 달란트 그대로 갖고 왔습니다. 그런 한 달란트 받은 종을 향해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갖고 있던 것을 빼앗아 열 달란트 받은 종에게 주었습니다. 그를 무익한 종이라고 하면서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과 인생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에 자족하고 감사하며 선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반면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어떻게 했습니까? 16절과 17절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라고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갖고 바로 가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도 그 종과 같이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가서’ 라는 것입니다. 바로는 시간적인 개념을, 가서는 행동적인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게으른 종으로 책망을 받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는 바로 가서 장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부지런했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즉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이유와 핑계를 대며 행동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게으른 성도도 즉시 순종하지 않습니다. 예화) 마귀의 전략 회의 마귀와 악한 귀신들이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 헌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전략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죽입시다’ 라는 의견을 내자 ‘순교는 교회 부흥의 씨가 됩니다’ 라고 반대했습니다. ‘고난을 당하게 합시다’ 라는 의견을 내자 ‘고난을 당하면 더 기도하고 믿음이 강해집니다’ 라고 반대했습니다. 많은 의견들이 있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열심히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하고 성경도 보고 사랑도 하게 하자. 그러나 내일부터 하자고 유혹하자’ 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택한 방법은 지금하지 말고 내일 하자, 다음에 하자로 정했습니다. 악한 마귀는 성도들을 어떻게 미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지만 다음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직분을 받았지만 더 온전해지면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좋은 상황과 환경이 되었을 때 헌신하고 충성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생활의 여유가 있고 시간이 날 때 하라는 것입니다. 혹시 그 유혹에 넘어가 다음으로 미루고 있지 않습니까? 차차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게으른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결단을 하지만 순종하지 않는 것은 게으른 것입니다. 직분을 받고 거룩한 부담을 느끼지만 헌신하지 않는 것은 게으른 것입니다.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무엇을 계획하셨습니까? 어떤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어떤 결단을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다음으로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도 하지 못합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즉시 가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을 향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21절에서 23절은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라고 합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을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했습니다. 적은 일에 충성했기에 많은 것을 맡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착한 종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착한’ 은 헬라어 ἀγαθός(아가도스) 로 ‘선한 혹은 좋은’ 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그 종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착하다는 것은 단순히 성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적 분별력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착함은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이익을 남겼을지라도 주인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는 신앙과 생활, 인생은 선한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은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고 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이에 바나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나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좋은 땅에 좋은 나무가 자랄 수 있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착한 종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남겨 드리는 인생과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충성’ 은 헬라어 πιστός(피스토스) 로 ‘신실함 혹은 헌신 된’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어떻게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사용했는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으로서의 신실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인의 뜻에 철저하게 헌신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종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태도로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자들은 충성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절과 2절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즉 구원의 복음을 맡은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충성된 일꾼으로 헌신할 것을 기대하셨기에 귀한 달란트를 맡겨주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인생을 살아가며 충성하는 것은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실망하게 해 드리는 자가 아니라 충성함으로 만족시켜 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잠언 25장 13절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고 합니다. 우리 모두 충성된 일꾼이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얼음냉수가 같은 종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들을 향해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을 맡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 종들이 한 일이 적은 일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적은 일일지라도 주인이 맡기신 것이기에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그 어떤 것일지라도 감사하며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복음을 위해 더 크게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많은 생각과 계획을 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기도의 제목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과 계획만 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만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충성된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언제 해야 합니까?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즉시 시작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내일로 미루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믿음으로 도전하고 달란트를 남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께 칭찬과 인정을 받는 종으로 살아가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