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실 그분이 당신입니까? 누가복음 7:18-23 청년부 사역을 할 종종 결혼에 대한 것으로 상담을 요청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결혼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것입니다. 그때 제가 그 청년에게 세 가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며 기도하고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첫째, 꼭 결혼해야 하는가? 둘째, 꼭 지금 결혼을 해야 하는가? 셋째.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 만약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기도하며 응답과 확신이 서지 않으면 잠시 더 기다리며 기도했으면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결혼하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더 행복한 결혼, 온전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던 결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과 그 사람에 대해 확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오실 그분이 당신입니까? 라는 질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질문입니다. 그는 이 질문을 통해 예수님이 자신들이 바라고 기다리던 그분, 즉 그리스도이신지 확신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앞에 두고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구원자라는 것을 믿고 확신하지 않는다면, 성탄절은 우리에게 신앙적인 의미와 가치가 없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세상 사람들처럼 선물을 주고받으며, 캐럴을 들으며 육체의 쾌락과 즐거움을 나누는 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례 요한은 자식이 없던 제사장 사가랴와 아내 엘리사밧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예고하고 주신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음식으로 먹으며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하며 세례를 주었습니다. 요한의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고 직선적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은 그런 요한을 누구라고 생각했습니까? 누가복음 3장 15절은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라고 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바라고 기다리는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입니다. 그는 유대인을 구원할 자였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을 믿고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세례 요한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누가복음 3장 16절은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그들이 바라고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오실 그분은 자신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분이라고 합니다.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막 1:9). 그 후에 세례 요한은 헤롯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갈릴리 지역을 통치하던 로마의 헤롯 안티바스는 이복동생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유혹하여 자신의 아내로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세례 요한은 그의 죄악을 지적하며 회개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헤롯은 세례 요한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있었을 때 어떤 소문을 들었습니까? 마태복음 4장 23절과 24절은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모든 곳을 다니시며 유대인들의 회당 안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수리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 귀신들린 사람, 간질병에 걸린 사람, 중풍에 걸린 사람들을 데려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소문은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렸으며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감옥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전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세례 요한은 어떻게 했습니까? 19절과 20절은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제자 가운데서 두 사람을 불러 예수님께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를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여 “오실 그이가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물어보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질문한 ‘오실 그이’ 는 시편 40편 7절과 시편 118편 26절과 다니엘 7장 13절에서 유래한 메시아, 즉 구원자 그리스도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듣고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던 구원자 그리스도이신지 물어보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도 믿지 않은 불신앙의 질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기 위해 질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이 기다리던 그 메시아, 구원자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11월에 한동대학교 권용성교수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제가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5년 동안 신앙을 지도했던 분입니다.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던 아버님과 어머님을 보고 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에 대한 열정이나 확신이 없었습니다. 대학생 때 선교하러 가서 집회에 참석하면서 이번이 아니면 그저 그런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으며 성령께서 철저하게 회개를 시키시고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텍사스대학에 유학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전기를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에 귀국해서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한동대학교의 교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지식적인 부분을 교육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데, 그들을 신앙적으로 지도하고 그리스도인으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것도 매우 의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종종 신앙적인 의문이나 회의를 하면서 고민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의문과 회의를 교회에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불신앙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학생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하면 그들의 질문이나 회의는 신앙생활을 더 잘하기 위한 것이며, 더 분명히 확신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 학생들의 대부분은 신앙생활에 대한 좋은 의도를 갖고 질문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예수님이 메시아, 즉 구원자 그리스도라는 것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했으며, 자신보다 큰 능력을 갖고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을 보내서 한 질문은 예수님이 대한 분명한 확신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질문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질문을 받고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21절과 22절은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고 합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을 찾아와 ‘오실 그분이 당신입니까?’ 라고 할 때 마침 예수님께서 병자들과 악한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낫게 하시고 많은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해 보고 들은 것을 세례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는 표적을 통해 메시아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표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표적은 바로 그들이 바라고 기다리던 메시아, 즉 구원자 그리스도의 사역이며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35장 5절과 6절은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고 합니다. 이사야 61장 1절은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면 메시아가 임하면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고, 청각장애인이 들으며, 지체장애인이 걸으며, 언어장애인이 입을 열 것입니다. 또한 죽은 자들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예수님을 통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에수님의 성탄과 죽음과 부활과 재림은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온전한 신앙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에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23절은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으로 인해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과 행하신 역사를 통해 구원자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고 기다리는 예수님은 2000년 전에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시고 갈릴리와 유다와 예루살렘 지역에 복음을 전하시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재림하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탄을 맞이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탄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예수님을 구원자 그리스도로 믿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져야 하며,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가 더 기다려야 할 분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구원의 역사를 행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실 그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분은 다시 오실, 즉 재림하실 그분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며 이미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행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다시 오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바라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고백하며 성탄절을 맞이하고 보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질문과 회의에서 확답과 확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