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교제를 경험하라 로마서 1:7-17 로마 교회는 바울이 직접 방문해서 복음을 전해 세운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그 교회가 세워진 것은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로마에서 온 사람들이 설립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로마 교회는 이방 기독교들을 중심으로 세워졌으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였습니다. 이에 이방 선교에 관한 관심과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사명을 중심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로마를 방문하여 로마 교회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로마로 가는 길, 바울의 교회 사랑 이야기” 의 첫 번째 시간으로 “거룩한 변화를 경험하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하는 자에서 거룩한 변화를 경험하고 복음을 전해 교회를 세우고 섬겼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거룩한 교제를 경험하라” 는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며 행복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과의 교제를 통해 거룩한 은혜와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거룩한 변화를 경험하고 거룩한 교제를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교회의 존재 목적과 역할은 무엇입니까? 가장 일반적인 것은 예배와 친교와 전도입니다. 즉 하나님을 예배하며 성도들이 친교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와 친교와 전도를 교제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입니다. 친교는 성도들과의 사랑의 교제입니다. 전도는 불신자들과의 복음의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온전한 교제는 무엇입니까? 예배와 친교와 전도입니다. 하나님과 신자들과 불신자들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모두 중요하고 소중한 교제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들과 친교를 나누며 불신자들과 교제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언급하는 교제는 무엇입니까? 로마 교회 성도들과 나누는 친교로서의 교제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교제가 아니라 신앙 안에 있는 거룩한 교제입니다. 성경에서 교제는 κοινωνία(코이노니아) 로 ‘사귐과 나눔’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교제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의 교제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은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셔서 구원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와 더불어 하는 교제가 모든 교제의 출발이며 중심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온전해야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도 온전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불신자들과 교제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핵심적인 교제는 하나님과의 교제인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가 온전히 세워지고 성도들과의 관계도, 세상 사람과의 관계도 온전히 세워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다른 성도들과 교제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7절은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영적인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교제는 인간적인 사랑이나 관계가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초로 구원을 받은 모든 자를 대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고 있을 때 교회 안에서의 교제를 소중하게 여기며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에서 무엇이 중심입니까? 혹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중심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공동체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영적 가족으로서의 교제가 중심이 될 수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과의 교제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첫째, 감사입니다. 8절은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세상에 전파되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원망은 교제를 단절시키지만 감사는 교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둘째, 기도입니다. 9절은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항상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영적 교제를 위해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원망하지 말고 감사했으면 합니다. 항상 생각하고 기도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과 거룩한 교제를 위해 감사와 기도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제를 위한 거룩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한 의도를 갖고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과 교제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룩한 교제가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첫째, 믿음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절은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그들을 신앙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 때문입니다. 그 신령한 은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믿음을 강건하게 하는 선물입니다. 그것을 로마 교회가 처한 상황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의 핵심구절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는 말씀입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그 당시 로마 교회는 교리적인 면에서 혼란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구원을 얻는 복음과 복음에 합당한 삶에 대해 기록하여 로마 교회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나누고자 한 신령한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그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으로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려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복음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의 거룩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견고하게 세워지며 세우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큰 격려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2절은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고 합니다.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여 거룩한 교제를 하려는 것은 서로 안위함을 얻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안위는 ‘서로를 격려하다’ 는 뜻입니다. 그 당시 로마 교회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지금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극심한 핍박이나 박해를 받는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하고 쉽게 하려는 것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신앙생활로 인한 박해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로마서 12장 12절에서 14절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이 당하고 있던 신앙으로 인한 박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박해로 인해 절망할 수 있었습니다. 환난으로 인해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궁핍함으로 쓸 것이 없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박해와 환난에서 신앙생활을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성도들과의 거룩한 교제에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코로나 19가 영향을 준 것은 신앙생활에 대한 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룩한 교제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며 큰 힘과 용기를 주었으면 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들리면 잡아 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손을 잡아 주고 때로는 등에 업고 함께 가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거룩한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13절은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라고 합니다.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여 거룩한 교제를 하려고 한 것은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번 로마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했지만 길이 열리지 않고 막혔습니다. 그러나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으며 성도들과 거룩한 교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함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들어가 교제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로마서 15장 23절과 24절은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고 합니다. 그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함으로 열매를 거두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로마를 거쳐, 서바나, 즉 스페인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는 기쁨을 잠시 가진 후에 파송을 받아 복음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떠날 계획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열매를 거두는 일 역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성도들의 거룩한 교제를 통해 함께 감당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복음을 갖고 나가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며 재정적인 후원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 가는 선교사도 있고 보내는 선교사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복음의 열매를 위한 거룩한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는 일은 저절로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으며 결국 거룩한 교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복음의 교제, 사랑의 교제, 사역의 교제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거룩한 교제를 통해 믿음을 견고하게 하며 큰 격려와 위로를 얻고 복음의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