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가 중심입니다 에베소서 2:11-18 우리 교회는 매년 고난주간이 되면 특별새벽기도회를 합니다. 지난 2011년에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를 하면서 십자가에 대해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했던 설교의 제목은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희생입니다. 용서입니다. 사명입니다. 능력입니다. 영광입니다. 자랑입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설교를 하면서 십자가가 신앙과 헌신과 삶의 중심이라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는 신앙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십자가가 있는 복음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십자가가 있는 사명이 진정한 사명입니다. 십자가가 있는 삶이 온전한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입니다. 교회는 구원 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고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문제는 교회를 새로운 사회요 공동체라는 이해와 의식이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교회에 세상적인 가치와 방법이 들어오면 갈등과 분열과 아픔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들이 하나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함께 세우며 섬기기 위해 잊지 않고 생각해야 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때에’ 과 ‘이제는’ 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반드시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잊지 않고 생각해야할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해야 하는 그 때는 어떠합니까? 첫째, 그 때 육체의 상태입니다. 11절은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고 합니다. 그 때 그들은 육체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육체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로부터 비난과 정죄를 받고 있었습니다. 둘째, 그 때 영적인 상태입니다. 12절은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라고 합니다. 그 때 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이방인들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받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을 유업으로 얻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는 단순이 이방 그리스도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구원을 받을 만한 조건이나 자격이 전혀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죄와 허물도 죽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던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할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가 되었습니다. 악한 마귀의 종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소망이 없던 우리가 하늘에 소망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바울은 우리에게 일어나 놀라운 변화를 언급하기 위해 ‘이제는’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의 중심에 무엇이 있다고 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때와 이제의 변화 중심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역사의 중심에 어떤 분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영어로 ‘history’ 라고 하는데. 그 의미를 ‘그 사람의 이야기’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특히 역사의 구분을 B.C와 A.D로 나눕니다. B.C는 영어 ‘Before Christ’ 이며, A.D는 라틴어 ‘Anno Domini’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역사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세계의 역사만 아니라 우리 개인의 역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입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중심으로 일어난 놀라운 일에 대해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첫째, 십자가로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3절은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고 합니다. 바울은 전에는 하나님과 멀리 있던 자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해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범한 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 8절은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고 합니다.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후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몸을 숨겼습니다. 이는 죄로 인해 하나님을 가까지 하지 못하고 멀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들어 입었던 옷을 가죽 옷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수치를 감추어 주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십자가로 화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4절에서 16절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라고 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함께 안지도 않았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함께 교제를 하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께서 화평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는 둘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죄인으로서의 사람 사이를 연결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다리 놓아 사랑의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있던 담을 그리스도 육체로 허셨습니다.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방인과 유대인이라는 것으로 인해 서로를 멀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함께 교회를 세우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며 함께 교회를 세우며 섬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도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사이에 그 십자가가 있을 때 서로 다름은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채우는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십자가로 화목하게 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고린도후서 5장 18절과 19절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화복하게 하는 직분을 받는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는 사람들과 화목하게 살아야 합니다. 나아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자로 화목케 하는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화목케 하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과 화목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화평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십자가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절과 18절은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친히 오셔서 먼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습니다. 또한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도 평안을 전하셨습니다. 이는 멀리 있는 이방인들과 가까운 곳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평안의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있는 곳에 평안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승리의 복음입니다. 평안의 복음입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으로 평안을 얻는 자들은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유대 사람이든 이방 사람이든 모두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와 역사를 따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세우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믿는다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축복인지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배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요 축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중심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갈라디아 6장 14절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 합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기로 했습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옛사람을 못 박고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예배도, 성도들의 화목과 교제도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십자가 복음 위에 세워지며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십자가 복음 위에 견고히 세워지고 그 십자가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