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생활(4) : 말씀 요한복음 15:9-17 예화) “성경 말씀대로 살면 성공 못 해”(2021년 1월 28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 말씀에 대한 반응이 우리의 신앙 상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은 그렇게 큰 의미와 가치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터넷 기독교 신문인 뉴스앤조이에서 20, 30대 기독 청년에서 ‘성경 말씀대로 살면 성공할 수 있는가?’ 라는 설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 19.5%는 성공할 수 있다. 40.4%는 성공할 수 없다. 40.1는 기타로 나왔습니다. 이 통계가 우리는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주신 목적은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성경에는 말씀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는 독특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준행하다’ 라는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준행하다’ 는 ‘어떤 표준이나 기준이 될 만한 것을 그대로 밀고 나가다’ 라는 뜻입니다. 즉 어떤 표준이나 기준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준행하다’는 것은 언제 사용되었습니까? 창세기 6장 22절은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고 합니다. 신명기 4장 1절은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고 합니다. 에스라 7장 10절은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고 합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은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라고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준행하여 120년 동안 사람들이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산 위에 방주를 지었습니다. 모세는 규례와 법도를 준행하면 살 것이며 언약의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야고보는 율법의 준행자가 되고 재판관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의 기준입니다. 말씀은 화와 복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준행하며 살았습니다. 그 말씀을 준행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표준과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성도들이 믿고 따르는 12신조의 1조는 ‘신,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문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라고 합니다. 또한 대요리문답 3문은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는 임직식에서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느뇨’ 라고 질문하고 서약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신앙이나 행위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직분자들이 반드시 명심할 것은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신앙과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비극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신앙, 말씀과 상관이 없는 생활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 말씀에 대해 교훈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관련된 구절은 3절, 7절, 10절, 12절, 14절, 17절, 22절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세 가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첫째, 말씀을 순종할 때 거룩한 변화가 있습니다. 3절은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다’ 고 하셨습니다. 그 일러준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으며 가르치셨습니다. 복음에는 강력한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복음이며, 구원의 복음이며, 변화의 복음이며, 능력의 복음입니다. 또한 ‘깨끗하여졌다’ 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일어난 거룩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 변화는 영적인 것과 생활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자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질병과 더러운 귀신의 아래에 있던 자가 육체의 치유와 영적 자유를 얻었습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 생활이 변하게 됩니다. 야고보서 1장 21절과 22절은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고 합니다. 더러운 것을 버립니다.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 있는 곳에 거룩한 변화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은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고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영혼이 깨끗하게 변화될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말씀을 통해 거룩한 변화를 경험하는데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말씀에 순종할 때 기도응답이 있습니다. 7절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고 나무로부터 영양분과 수분이 흘러 갈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현상을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 안에 거할 때 원하는 것을 구하면 이룰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고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과 기도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도 응답에 있어 말씀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에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말씀에도 뜻과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원하는 이루리라’ 는 것은 예수님의 뜻과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드릴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기도는 무엇입니까? 잠언 28장 9절은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듣지 않고 하는 기도는 가증스런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기도하도 하나님도 귀를 막고 듣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6장 9절과 10절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합니다. 기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이 땅에 이루어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깨닫고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기도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는 기도는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는 기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는 기도는 정욕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요한일서 3장 22절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순종을 위한 것이며, 순종할 때 더 많은 기도 응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룰 수 있기를 위해 기도했으면 합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식의 부탁을 더 잘 들어 줍니까?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식입니다. 부모님의 뜻과 마음에 흡족한 부탁을 할 때입니다. 부모님이 주신 것을 부모님이 기뻐하는 일에 사용할 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기도가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 응답을 통해 받은 것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도 응답으로 주신 지혜와 지식을, 성공과 출세를, 재물과 건강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 응답에 대한 많은 간증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에서 말씀과 사랑을 연관시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2절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3장 34절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하신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사랑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타락한 본성을 갖고 있는 악한 존재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구하신 새 계명을 따라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비록 내 생각과 감정과 유익을 따르면 사랑할 수 없지만, 말씀을 따르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며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그것은 불순종입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자, 박해하는 자, 미워하는 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도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성서유니온에서 나온 매일성경을 참고로 새벽기도회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매주일 주보에 성경 묵상과 성경읽기에 대한 분량이 있습니다. 그것을 참고해서 성경을 읽고 묵상했으면 합니다. 그것을 따라 묵상하면 4년에 한 번 묵상하고, 일 년에 한 번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표준과 기준으로 삼아 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기초와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과 삶을 세워야 합니다. 특히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에 머물지 말고 순종하는 것이 지혜로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거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순종함으로 변화의 열매, 기도 응답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