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시리즈(1) : 확신의 중요성 히브리서 3:12-14 저는 개인적으로 본문 강해 설교를 선호하지만, 최근에는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서 7월은 회복에 대해, 8월에서 9월은 예수님처럼 살기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이렇게 시리즈 설교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코로라 19로 인해 필요한 것이 회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기에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것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회복을 경험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감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확신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일상생활이나 신앙생활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믿음과 삶이 위축되고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성경통독을 통해 말씀이 주는 확신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11월 11월 1일부터 시작하는 다니엘기도회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매주일 선포되는 확신에 대한 말씀을 통해 더 분명하고 견고한 신앙의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와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확신을 갖고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확신의 서론적인 부분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갖는 확신을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과 대인관계와 신앙생활에 영향을 주는 매우 중요한 확신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 적절한 확신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종 불행한 인생을 살고 계속해서 사람들과 갈등하며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있는 핵심적인 것은 잘못된 확신을 갖고 있거나, 견고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잘못된 확신이 있다면 변화시켜 주시고, 확신이 없다면 견고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확신이라는 설교를 준비하고 기도하면서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불행한 인생을 살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울입니다. 다른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살면서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사울, 즉 바울입니다. 그들은 모두 사울이라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으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리스도인의 확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울 왕은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온전한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확신이 그들의 인생과 관계와 신앙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었던 확신으로 인해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 사울 왕의 잘못된 확신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울이 왕이 되는 것을 모든 사람이 원하고 기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몇 불량배들은 사울이 왕이 되어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왕이 된 사울을 멸시했으며 예물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언제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흔들립니까? 자신감이 사라지고 자존감이 낮아집니까?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과 멸시를 받을 때입니다. 인정과 존중을 받지 못할 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난과 멸시를 받고, 인정과 존중을 받지 못하면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됩니다. 열등감에 빠져 민감하게 반응하며 방어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견고한 확신입니다. 사울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윗과의 관계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배반하고 왕이 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는 꿈을 갖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에 다윗에 대해 좋지 않는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입니까? 사무엘상 18장 8절과 9절은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고 합니다.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여인들이 사울이 죽은 사람은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사람은 만만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울은 매우 불쾌했으며 백성들의 마음을 얻은 다윗이 얻을 것은 이스라엘 밖에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이에 그날부터 다윗의 모든 행동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윗에 대해 질투와 적대감을 갖고 바라보았습니다. 사울은 다윗과 비교되면서 열등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의 사울은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 아니라 다윗을 죽이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잘못된 확신은 소중한 관계를 망치게 만들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한 것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기 위해 수넴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블레셋 군대를 보고 마음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지만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로도 대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기도에 침묵하셨습니다. 이에 어떻게 했습니까? 사무엘상 28장 7절은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라고 합니다. 사울은 신하들을 시켜 신접한 여인을 찾아 전쟁에 대해 물으라고 했습니다. 신하들은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사울을 통해 잘못된 자기 확신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무너지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가져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건강한 확신은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갖게 만듭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 확신이 자신에 대한 자존감으로, 또한 사람들에 대한 신뢰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이 원만한 인간관계와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에게 건강한 자존감과 원만한 인간관계와 온전한 신앙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도 바울의 온전한 확신입니다. 사울, 즉 사도 바울은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으며, 대적자들로 인해 낙심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사명에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과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확신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1장 1절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이라고 합니다. 그는 바울서신에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도로서의 건강한 자부심과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확신이 있었기에 복음과 교회의 일꾼으로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에게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빌레몬서 1장 21절은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고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회심을 한 오네시모를 원래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종이 아니라 형제로 받아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방문했을 때 머물 숙소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바울이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빌레몬의 순종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부탁보다 더 행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행동은 동역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동역자들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갈등하고 떠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낙심하고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인내할 수 있었으며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 하나님의 일꾼들에 대한 확신 즉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들로 인해 시험을 받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회와 복음을 위해 함께 동역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있는 가장 중요한 확신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8장 38절에서 39절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 합니다. 바울은 많은 고난과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상황과 환경도, 어떤 사람과 존재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에게 있는 모든 확신은 하나님에 대한 것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로서의 적절한 자부심과 자존감도 있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확신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확신, 즉 견고한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무너지면 우리 자신이나 인간관계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확신을 통해 우리의 인생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온전히 세워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기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무엇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첫째, 불신의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합니다. 12절은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라고 합니다. 그 누구도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가는 자들이 없도록 매우 조심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악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확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위기를 만나면 신앙이 흔들리고 하나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 코로라 19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위기는 신앙을 흔드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위기로 인해 신앙이 무너집니다. 관계가 무너지며, 삶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마음이 완고해지지 말라고 합니다. 13절은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고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무엇을 권면합니까? 죄의 유혹으로 인해 마음이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죄는 악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완고함은 불신앙적인 마음이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서로 잘못된 확신을 갖지 않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갖고 유혹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서로를 권면하고 격려하며 더 하나님에 대한 더 견고한 신앙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확신을 끝까지 유지하라고 합니다. 14절은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광야로 들어갔을 때에는 언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분명한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많은 시험과 유혹과 결핍과 고난을 겪으면서 확신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과 마실 것으로 인해, 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약해지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확신이 있었기에 거인 아낙 자손이나 환경으로 인해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으며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에 그들을 자신들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나안의 땅에 들어가 안식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확신을 흔들어 요동하게 하며, 넘어지고 허물어지게 하는 것을 이겨야 합니다. 그 확신을 견고히 붙잡고 영적인 여정을 끝까지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확신은 견고한 믿음이며 신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확신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확신이 자신에 대해서는 자신감, 또는 자존감으로,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신뢰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과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확신이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갖게 하며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갖게 합니다. 지금 우리는 매우 힘들고 혼란스런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시작하는 모든 확신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 선명하고 분명하고 견고한 확신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며 유혹과 미혹을 분별하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