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19-23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에서 있어서, 만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 탁월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 없는 구원이 없습니다. 모든 만물은 예수님으로 말미암고, 예수님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예수님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셨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전에는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첫째로 우리는 과거에 어떠한 상태에 있었습니까?
바울은 21절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우리는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자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멀리 떠나다’라는 것은 ‘다른 것을 따르다’ ‘다른데 관심을 두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죄가 들오기 이전의 에덴동산에 사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최상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에 의해 하나님과 관계는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3장에서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으나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데 사단의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난 것입니다. 그 후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즐기며 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서 16절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금하신 세상적인 쾌락에 대한 욕망을 사랑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에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교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욕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베드로전서 1장 14절에서 16절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던 때와 같이 사욕을 쫓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영원히 멸망 받아야할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요, 불행한 인생을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이요, 실상이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2절에서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합니다.
둘째로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어떠한 상태가 되었습니까? 바울은 ‘전에는 ...멀리 떠났다’ 그러나 ‘이제는 서게 되었다’라는 단어를 대조적으로 사용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원의 은총과 축복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일어난 것은 무엇입니까? 전에 악한 행실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6절은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합니다. 이제는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은총을 입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죄의 노예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장 6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악한 사단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를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단을 섬기고 따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자가 되었습니다.
예화) 자유를 주는 십자가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 항에서 하늘 높이 솟아 있습니다. 위엄이 넘치는 이 여신상은 100년이 넘도록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들어 학정과 억압으로 질식 상태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신상이 상징하는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몰려 왔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의 아래에는 엠마 나사로의 감동적인 글이 이렇게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피곤한 자들, 가난한 자들, 자유로이 숨쉬기를 사모하여 찾아오는 자들, 그리고 이 해변으로 몰려드는 비참하게 버려진 사람들을 내게 주세요. 집 없는 이, 격랑에 시달린 이들을 내게 보내세요, 내가 황금의 문 옆에서 나의 등불을 높이 들겠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기념비 하나가 인간의 역사 속에 우뚝 서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종으로 살아온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영적인 자유를 주는 기념비입니다. 그것은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달렸던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찬송가 137장은 ‘만 왕의 내 주께서’라는 제목으로 아이작 왓츠가 지은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엄청난 변화와 축복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주홍 같고, 붉은 피 같은 죄가 양털 같이, 흰 눈 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저주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사망이나 지옥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소유하게 된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놀라운 영적인 변화 축복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복하게 되고,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23절에서 그 복음의 은혜가,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는...에서 이제는 으로 변화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으로 천하 만민에게 전파하며 살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것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합니다. 그 첫째는 믿음에 거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셋째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화) 이것이 사명이다 2003년에 타임지가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을 선정했는데 그 중 1위는 빌게이츠도,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도 아니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성 토크진행자였습니다.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시청자가 평균 1,000만이 넘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미국인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녀가 ‘가난한 고아원을 방문했는데 그곳에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10초만 얘기하면 다음날 그 고아원에 수십억의 기부금이 도착합니다. 그녀가 방송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요’라고 한마디 하면 그 책은 다음날 미국 내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그녀의 이런 영향력을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녀의 책, 「이것이 사명이다」에 나오는 네 가지 인생철학에 그 해답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게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신 하나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도 우리에게 복음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우리는 복음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사역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역의 현장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해 복음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일하셨습니다. 우리도 거룩한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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