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시리즈(6) : 인도의 확신 잠언 3:5-7 예화) 화니 제인 크로스비 화니 제인 크로스비는 1820년에 태어나 95세 되는 1915년에 죽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10,000편 이상의 찬송가를 작사했으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21세기 찬송가에 22편이 들어 있습니다.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565장 ‘예수께로 가면’ 등입니다. 그런 크로스비는 눈이 보이지 않은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태어 난지 6주가 되었을 때 의료사고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30세가 되었을 때 부흥회에 참석을 하여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네...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찬 143) 라는 찬송을 부르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크로스비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 원했으며 시를 쓰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작사한 찬송가는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찬 531장)입니다. 어느 날 크로스비가 갑자기 시를 쓴 것을 출판사에 가지고 가기 위해 5불이 필요했는데 없었습니다. 그녀는 평소처럼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크로스비를 찾아왔다가 기도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크로스비의 손에 5불을 쥐어 주고 갔습니다. 이에 크로스비는 너무 놀랍고 감사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4장 7절과 8절의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는 말씀을 배경으로 찬송시를 썼습니다. 그 찬송이 38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입니다. 크로스비가 어느 날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 크로스비는 “제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면 저는 맹인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 내 눈이 제일 먼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얼굴이 나의 주님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크로스비는 비록 눈은 볼 수 없었지만 평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감사하며 찬송하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고 느끼고 감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확신 시리즈 여섯 번째로 인도의 확신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발견하고 감사하고 확신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출애굽기 20장 2절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그들을 종으로 살던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인도자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디로 인도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약의 땅에 가기에 가까운 블레셋 길이 아니라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거리는 측정하는 장소와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약 640km입니다. 그 거리는 자동차로 8시간, 걸어서 2~3개월 정도면 갈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길로 인도하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첫째,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7절은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이 살던 땅의 길이 아니라 광야의 길로 인도하신 것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블레셋과 전쟁을 하면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들을 것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길, 즉 돌아가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름길로 인도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는 지름길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돌아가는 길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때로는 실패가 하나님의 축복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름길로 가고 성공하면 오히려 해가 되는 것을 아시기에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이해할 수 없어도 돌아가는 길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단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8장 2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가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광야의 길을 가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며 시험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알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연단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광야의 길은 연단을 위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의 길을 가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길을 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믿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광야의 길에서 연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길로 인도를 받고 어떻게 했습니까? 민수기 21장 4절은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땅을 지나지 않기 위해 홍해 길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홍해 길은 험하고 거친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홍해 길로 인해 마음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불 뱀에 물려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길은 광야의 거칠고 험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포장도로와 같은 평탄하고 편한 길이었습니다. 거친 숨을 고르며 올라야 하는 오르막길이 아니었습니다. 콧노래를 불며 내려오는 내리막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광야와 같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기에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기도 하며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낙심하기도 하며 절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사야 55장 8절과 9절은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길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높습니다. 우리의 길보다 하나님의 길이 더 높습니다. 우리는 빠른 길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바른 길을 원하십니다. 예화) 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지난 11월 20일에 다니엘기도회 강사는 윤선디자인의 대표로 있는 정윤선집사였습니다. 그의 간증의 제목은 ‘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였습니다. 그는 고통스럽고 힘든 어린 시절과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새 어머니가 들어오셨는데 자녀를 학대하셨습니다. 어렵고 공부를 하고 사모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 들어갔지만 중퇴를 했습니다.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찬양 간사를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뇌종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포도가 먹고 싶다고 해서 마트에서 시장을 보는데 지갑을 소매치기로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을 갖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도둑이 들어 모든 서랍장이 열려 있었습니다. 아이가 깰까 봐 수건을 들고 거실로 나와 ‘하나님, 제가 참 힘들게 살았는데, 어떻게 이러세요?’ 라며 엉엉 울었습니다. 아이가 깨는 소리에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토닥거리며 재우는데, 이때 정윤선집사의 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손이 있어 아이를 토닥이며 재울 수 있고, 눈이 있어 아이를 볼 수 있고, 귀가 있어 남편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은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감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지금도 정윤선집사의 남편은 뇌종양을 투병 중에 있고,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고 아이를 양육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윤선집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광야의 길로 인도하신 것을 이해할 수 없고 원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광야의 길이 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위대하시고, 언제나 옳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늘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잠언 3장 5절에서 7절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라고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사망의 길이며 망하는 길이며 실패하는 길과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흥하는 길입니다. 성공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광야 같은 길을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이가 태어나 젖을 먹을 때에는 가슴에 안고 등에 업고 인도합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 손을 잡고 인도합니다. 자유롭게 걸을 수 있으면 곁에서 함께 걸어 줍니다. 그리고 더 성장을 하면 말씀으로 가야할 길을 인도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황과 환경과 능력에 맞게 인도하십니다.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십니다.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가장 유익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