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0:1-16 2024년이 이틀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틀이 지난다고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2025년 1월 1일이 되면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2025년을 맞이하며 매일 그런 날로 맞이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것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한 해를 새롭게 게획하기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한 해를 계획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12월 31일 저녁 11시에 있는 송구영신예배에 모든 성도들이 참석했으면 합니다. 예배에 참석할 때 2025년 신년기도카드를 작성해서 가지고 오고, 한 해를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하는 책갈피를 선물로 가져가기를 바랍니다. 2024년의 마지막 주일에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포도원 일꾼의 비유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 비유를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지금 거룩한 결단이 있었으면 합니다. 포도원 일꾼의 비유에 관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어떤 포도원 주인이 있었는데 새벽 일찍 일꾼을 구하려고 나갔습니다. 그는 일꾼들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씩 주기로 약속하고 그들을 포도원에 일하도록 들여보냈습니다. 한 데라니온은 그 당시 일꾼을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3시, 즉 9시에 다시 나가 보니 일거리가 없어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자기 포도원에 가서 일하면 정한 삯을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주인은 3시, 즉 오전 9시, 6시 즉 정오와 9시, 즉 오후 3시에도 나가서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일하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까? 6절과 7절은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고 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제십일시, 즉 오후 5시에 나가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에 그들에게 어찌해서 종일토록 놀고 서 있느냐? 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무도 자신들을 일꾼으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그들을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인력 시장이 이른 새벽부터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나온 사람 중에 선택을 받아 일하기 위해 현장으로 떠난 사람도 있지만, 선택을 받지 못해 인력 시장 부근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좀 늦게 일꾼을 구하러 온 사람에 의해 선택을 받고 떠나기도 합니다. 그들이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주인의 포도원에서 일하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체격이 좋고 건강해야 하는데 작고 연약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포도원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주인이 보기에 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바로 선택하여 일을 시킬 수 없었습니다. 주인은 관리인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8절과 9절은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이라고 합니다. 관리인은 주인의 명령을 받고 제일 나중에 온, 즉 오후 5시에 온 일꾼부터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습니다. 아마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많은 시간 일을 한 일꾼은 제일 마지막에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1절과 12절은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 오후 5시에 와서 약 한 시간 정도밖에 일하지 않고 먼저 와서 일한 자신들과 같은 한 데라니온을 받는 것을 보고 주인을 향해 원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종일 더위를 견디며 일을 했는데,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일꾼과 같은 한 데라니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원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정당한 요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원망은 무엇으로 인한 것입니까? 비교로 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수고의 시간과 양을 비교할 때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교를 통해 정당한 대가나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손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원망합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기에 원망합니다. 혹시 지금 무엇 때문에 원망하고 있습니까? 그 원망이 타당하고 정당한 것입니까? 아니면 비교와 대우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 때문은 아닙니까? 비교하고 원망하는 자가 아니라 자족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주인은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첫째, 주인은 약속대로 했다고 합니다. 13절은 ‘주인이 그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합니다. 주인을 향해 원망하는 한 사람에게 주인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약속한 대로 하루 품삯 한 데나리온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그들과 약속을 신실하게 지켰습니다. 계약을 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주인의 뜻대로 했다고 합니다. 14절과 15절은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라고 합니다. 먼저 일을 한 사람이나 늦게 일을 한 사람에 준 데라니온은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동일한 데라니온를 준 것은 주인의 뜻이었습니다. 그것을 포도원 일꾼들이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런 일은 일어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도서 2장 24절은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수고하여 얻는 것으로 먹고 마실 수 있는 것보다 더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기에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할 수 있게 하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은총의 선물로 받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16절은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을 먼저 시작하고 오랜 경력에 더 큰 가치나 보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중에 시작했을지라도 더 열정적이고 충실하게 임한 사람이 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입니다. 누구를 먼저 구원하시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구에게 상급을 주시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태도입니다. 그 교회를 오래 다니며 섬긴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성도들보다 우월하게 여기거나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동등한 가치와 신분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포도원 일꾼의 비유에서 핵심적인 단어와 내용은 무엇입니까? 핵심적인 단어는 시간입니다. 새벽, 삼시, 육시, 구시, 십일시는 주인이 종들을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부른 시간입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시간에 부름을 받았으나 수고의 대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금이 세 가지라고 합니다. 그것은 황금과 소금과 지금입니다. 황금은 인간 역사에서 오랜 시간 동안 부와 권력, 풍요를 상징해 왔습니다.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천국은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포도원 주인이 종들을 부르고, 종들의 수고를 통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더 오랜 시간 수고한 성도들도 있습니다. 더 많은 일을 한 성도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십 일시에 선택을 받은 종이 장터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까요? 그 종은 마지막에 부름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새벽과 삼시, 육시와 9시가 되어도 선택을 받지 않은 종 중에는 포기하고 떠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 일시에 선택을 받을 종은 끝까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늦게 선택을 받아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순간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절과 2절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합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헌신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포기하지 않고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수고하고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모든 것은 지금 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