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3) : 순종하는 삶 사무엘상 15:17-24 2024년 우리 교회 표어는 ‘성장’(Grow)! ‘은혜와 지식 안에서 자라가라’는 것입니다. 성장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❶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관심과 시간과 재물과 에너지를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❷ 부흥을 경험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회개와 회심과 회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Obedience, 즉 순종하는 삶에 관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가스펠 헤럴드지에 게재되었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세실은 사랑하는 어린 딸의 방으로 갔습니다. 딸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에게 있는 아름다운 구슬 보여주며 자랑을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 세실이 딸에게 충격적인 요구를 했습니다. 그것은 딸이 소중하게 아끼고 자랑하는 구슬 상자를 불 속에 던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딸은 당황하고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시험이었으며 따르기에 어려운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세실은 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게 강요하지는 않겠다. 너에게 맡기겠다. 이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니 네가 나를 믿는다면 그렇게 해라.” 딸은 많은 생각과 고민하다가 결국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기를 택하고 구슬 상자를 불 속에 던졌습니다. 그 일이 있었던 후 아버지 세실이 딸의 방에 들어와 예쁘게 포장된 상장을 주었습니다. 그 상자에는 딸이 오랫동안 갖고 싶어 했던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구슬이 들어 있었습니다. 세실은 사랑하는 딸에게 “내 딸아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네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였단다. 너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여러 차례 네가 이유를 모르는 가운데 포기하고 버릴 것을 요구하실 것이다. 그때 네가 나를 믿었듯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다면 너는 언제나 그것이 최선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순종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순종하기 위해서는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자랑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수 있으며, 손에 움켜잡은 것을 놓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불순종에 관한 것입니다. 순종이 아닌 불순종에 대해 나누는 것은 부정적인 것을 통해 긍정적인 교훈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울의 불순종을 통해 순종에 관한 교훈과 도전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과 전쟁을 명령하시면서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 명의 군사로 이십만 명의 아말렉 군사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모든 것을 멸하지 않았습니다. 신원하 목사는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라는 책에서 4세기 사막 수도사가 만들어 기독교 역사 1,500년 이상 전해 내려온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의 일곱 가지 죄가 있다고 합니다. 심원하 목사는 허영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인을 유혹하여 넘어뜨리고 영혼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죄악들은 우리가 욕망과 유혹에 맞서 싸우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고 하면 버리고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버리고 극복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온전히 경외하지 못하며 불순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울에게 있어 순종의 장애물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탐심입니다. 탐심은 지나치게 무엇을 가지거나 차지하고 싶은 욕심입니다. 바울은 탐심을 땅에 있는 육체의 욕망이며 우상숭배라고 합니다(골 3:5).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며 떠나게 할 수 있습니다. 탐심을 버려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으며 경외할 수 있습니다. 사울에게 있는 탐심은 무엇이었습니까? 9절은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고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아각과 양 떼와 소 떼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것들과 가장 기름진 짐승들과 어린 양들과 좋은 것들은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쓸모없고 값없는 것들만 골라서 진멸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들과 가장 기름진 것들을 죽이는 것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쓸모없고 가치 없는 것은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필요와 유익을 위한 탐심으로 인해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교만입니다. 교만은 잘난 체하며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악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부인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교만은 죄의 모태이며 불순종은 교만의 열매입니다. 사울에게 있는 교만은 무엇이었습니까? 12절은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고 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사울이 갈멜로 가서 승전비를 세우고 나서 떠나 길갈로 내려갔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운 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사울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과 말씀을 업신여기게 됩니다. 교만을 불순종을 낳고 겸손은 순종을 낳습니다. 셋째, 외식입니다. 외식은 사람에게만 잘 보이기 위해 보기 좋게 꾸며 내는 말과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해도,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사람은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식합니다. 그래서 결정적인 상황에서 불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울에게 있는 외식은 무엇이었습니까? 13절과 24절은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찾아왔을 때 그에게 하나님께 받을 복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사무엘을 존경하고 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사무엘에게 좋게 보이려는 위선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은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록 죄를 범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높여 달라고 합니다. 사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자신과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시거나 높여 주시는 분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가? 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외식적인 신앙을 버릴 때 하나님께 진실하고 순정한 신앙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탐식과 교만과 외식함으로 불순종한 것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17절은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라고 합니다. 사무엘은 불순종의 죄를 범한 사울을 향해 전에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스라엘 지파들의 머리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가족 중에서도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했었습니다. 이는 자신이 보잘 것은 없는 사람이기에 왕이 되기에 부족한 사람이라는 겸손이었습니다. 그런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왕으로서의 사명을 멸시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으며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교만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신앙적인 반응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불순종의 책망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21절과 24절은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사울은 불순종하고 좋은 짐승을 남긴 것은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한 제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울은 순종하지 않은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변명과 핑계를 대었습니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싫어하는 일은 핑계를 찾게 되고 좋아하는 일은 방법을 찾게 됩니다. 하기 싫은 일은 이유를 찾게 되고 하고 싶은 일은 수단을 찾게 됩니다. 귀찮은 일은 불가능을 찾게 되지만 원하는 일은 가능성을 찾게 됩니다.” 사울은 순종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순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순종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합니다. 좋아하지 않아도 해야 합니다. 귀찮아도 해야 합니다. 불순종에 대한 이유나 핑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보다,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불순종은 하나님이 악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에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순종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불순종한 사울을 향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22절과 23절은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십니다. 순종을 번제와 다른 제사보다 좋아하십니다. 순종이 제사와 제물보다 더 낫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헌물과 헌신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이 없는 신앙적인 행위를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불순종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에는 화를, 순종에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가장 좋은 것과 기름진 것을 받고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2024년 삼 분기에 존 비비어의 ‘순종’이라는 책을 나눌 것입니다. 그는 “순종의 차원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믿음도 커진다.”라고 합니다. 순종이 믿음입니다. 순종이 사랑입니다. 순종이 헌신입니다. 순종이 성장입니다. 순종을 통해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헌신이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순종은 영적 성장의 증거입니다. 영적 성장은 진실한 순종에 있습니다. 순종하는 삶을 위해 탐심과 교만과 외식을 버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겸손한 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헌신이 순종을 통해 고백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