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생활(1) : 연합 요한복음 15:1-8 지난 일 년 동안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는 의욕보다는 할 수 없다는 낙심과 절망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런 상황에 대해 두려움과 분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때로는 체념하기도 하며 무감각하게 생활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고 결단해야 할 것은 믿음 안에서 적극적인 신앙과 일상의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21년 표어를 ‘주여! 나를 보내소서’ 라고 정했습니다. 매우 불안하고 힘든 환경과 상황에서 주저앉아 있지 않고 일어나 헌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해야 합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죄인임을 발견하고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 세상을 바라보시며 탄식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사야처럼 ‘주여! 나를 보내소서’ 라고 결단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 거룩한 기대와 소망을 갖고 2021년을 믿음으로 도전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화) 포도나무의 비밀 ‘야베스의 기도’ 를 쓴 브루스 윌킨스는 본문으로 「포도나무의 비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것은 풍성한 삶을 위한 영적 도약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평범한 삶을 벗어나 영향력 있는 삶으로 바뀌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위한 최대한의 영향을 미치는 기쁨을 경험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런 삶을 원한다면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신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해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제자의 생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있기를 원합니다. 성경에는 포도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가 그친 후에 방주에서 나와 포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또한 포도주에 취해 하체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포도나무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이적을 행하신 것도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포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종종 열매를 맺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열매를 맺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포도나무의 비유는 무엇입니까? 1절은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예수님은 자신은 포도나무이며 아버지 하나님은 농부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을 포도나무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농부가 있어야 포도나무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가 있어야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농부와 포도나무와 가지는 생명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 관계를 영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활에 있어 출발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습니다. 본문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표현하는 구절과 단어가 있습니다. 2절은 ‘무릇 내게 붙어 있어’ 라고 하며, 4절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고 하며, 5절은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라고 하며, 6절은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하며, 7절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안에 거하는 영적 연합에 대해 말씀하시며 권면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과의 영적 연합을 통해 받는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영적인 연합, 즉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어떤 일이 있습니까? 첫째, 구원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사랑 가운데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예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어난 놀라운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가장 큰 역사와 축복은 우리가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월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둘째, 변화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놀라운 변화는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즉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고 새 것이 되었습니다. 이는 옛사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의 옛 사람은 어떠했습니까?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24절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고 합니다. 옛 사람은 육체의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썩어져 가는 악한 습관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옛 사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거짓을 버리고 진실한 말을 합니다. 분을 낼수 있지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해가 지도록 품지 않습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수고합니다. 더러운 말을 입 밖에도 내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데 유익한 선한 말과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버립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변화되었으며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습관을 본받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변화를 받아 세상 사람들과 다른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때와 다른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셋째, 승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항상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모든 장소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낼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것은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2장 10절과 11절은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고 합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이 용서한 사람을 자신도 용서했습니다. 그가 용서할 일이 있어서 용서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 앞에서 용서한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용서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영적 전쟁에서 패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사탄의 계책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탄은 우리를 속이고 거짓을 행함으로 영적 전쟁에서 패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게 하며,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가장 큰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4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은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오시는 날에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 안에, 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제자들 안에 있을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안에 있는 것과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신비한 연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들어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화)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송가 370장은 ‘주 안에 있는 나에게’입니다. 이 찬송을 작사한 사람은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엘라이자 에드먼드 히윗입니다. 그는 1887년 겨울 불량한 소년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기 위해 복음을 전하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 때 갑자가 소년이 큰 스레트로 히윗 여사의 등을 내리쳤습니다. 척추에 큰 부상을 입고 6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심각한 신앙의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신경은 날카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증오가 싹트고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 병실을 청소하던 분이 찬송을 흥얼거리며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히윗은 “청소부 주제에 무엇이 그리 좋아 흥얼거려요” 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청소부는 웃으며 “나에게 닥친 형편과 처지가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께서 주셨으니 즐거울 수밖에요”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감 히윗은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불평과 증오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깊이 애통하며 회개의 눈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과 평안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그 후 히윗은 소년을 용서했으며 평생 청소년을 위한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변화를 경험하고 승리를 얻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구원과 변화와 승리를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연합, 거룩한 연합을 통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