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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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가르치자(신 31:9-13)2024-05-1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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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가르치자

신명기 31:9-13

 

예화) 사랑하기 때문에

어느 시골 학교에 아들 둘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 아들들은 가정에서도 엄마의 눈을, 학교에서 선생님의 눈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둘째 아들이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밖에서 놀다가 종이 치자, 자리를 정리하고 교실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친구가 너 엄마 무서워서 그러지?”라고 했습니다. 친구의 말을 들은 아들은 아니, 난 엄마를 사랑해서 가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까? 단순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면, 두려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고가 날 것 같아 주일 성수를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소유를 빼앗을 것이 두려워서 십일조를 합니다.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이 두려워서 봉사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지만 않으면 더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헌신하며 봉사하는 것이 짐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인해서도 경외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도 경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봉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는 예배와 헌신과 봉사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온전한 예배, 온전한 헌신, 온전한 섬김을 자리를 떠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있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은 아니라도 두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최소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 두려움을 넘어 사랑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화) 뒤틀린 삶을 바로잡아 주는 힘, 경외

탁월한 강연자이자 상담가인 폴 트립이 쓴 경외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뒤틀려버린 우리 삶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대상을 경외하고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마음은 불신앙과 불순종과 불평과 불만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는 경외심을 지배하는 것이 삶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되찾을 때 신앙과 삶은 하나가 됩니다. 교회와 관계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일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영적 어두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의 삶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성경은 많은 곳에서 하나님 경외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것은 우리가 힘써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일입니다.

 

교육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경외에 대해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 경외함을 배워야 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전적 의미에서의 경외는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경외를 구약 성경에는 יָרֵא(야레), 신약 성경에서는 φοβέω(포베오)로 기본적인 의미는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 존경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경외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장면입니다. 창세기 2212절은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하나님께서 번제로 드릴 것을 요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는 것을 보시고 아브라함의 신앙을 인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아끼지 않는 헌신입니다.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 말씀의 순종, 온전한 헌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브람이 하나님을 향한 태도는 예배와 순종과 헌신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힘들고 어렵지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고 존재할 의미가 없는 것일지라도 헌신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무너지는 것은 무엇에 있습니까? 예배와 순종과 헌신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순종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경외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를 어떻게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있습니다. 이에 성경은 배우고 가르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화) 신앙 교육 훈련에 대한 욕구

지난 421일 주보에 목회데이터연구소의 통계를 근거로 국민일보 김동규 기자의 신앙 교육 훈련에 대한 욕구하는 칼럼을 실었습니다. 교회를 출석하는 성도 10명 가운데 7명이 신앙 교육 · 훈련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욕구는 많고 고민은 크지만, 실제 신앙 교육이나 훈련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육과 훈련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재물과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육과 훈련을 위해 때로는 아끼고 버리고 멀리하고 포기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12절과 13절은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고 합니다. 모세는 율법을 적어 언약궤를 메는 레위의 자손인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에게 매 칠 년이 끝나는 해는 백성의 빚을 면제해 주는 해요. 그해의 초막절 기간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에 서면 이 말씀을 읽어 주라고 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아이나 외국인이나 할 것 없이 모든 백성을 불러 모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백성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4:10). 이스라엘 왕도 율법을 가까이 두고 읽어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했습니다(17:19). 제사장들도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가르쳐야 했습니다(욍하 17:28, 32). 언약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후손들과 자손들도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했습니다(31:13).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대상은 제한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모든 성도도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교회 직분자들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지 않아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모든 성도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봉사자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런데 잘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배울 수 있습니까?

겸손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영적 갈급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헤와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더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더 하나님을 잘 섬기기를 결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배우지 않고 하나님을 더 잘 경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배우지 않으면 자기의 생각과 마음과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어떤 일이 있습니까?

말라기 316절은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책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이름을 기록하십니다.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며 아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손으로 수고한 대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며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으며 치료하는 광선으로 인해 송아지같이 뛰게 될 것입니다. 악을 떠나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더 잘 섬기며 더 풍성한 복을 받고 누리며 나눌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폴 트립은 사역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되찾아 주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기독교 교육은 무엇입니까? 성경 교육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신앙의 가장 기본이며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 교육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과 직분자들과 교사들이 하나님을 경외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자녀들과 성도들과 자녀들이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온전히 예배하고 순종하고 헌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가르치는 직분자들과 부모와 교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사랑하고 감사하기에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들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