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디모데후서 3:13-17 예화) 아동부 학생의 설교 메모 코로라 19로 인해 모든 성도들이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감동을 받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감사헌금 봉투에 서툰 글씨로 아빠의 이름을 써서 드린 자녀도 있었으며,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들으며 메모하는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더 말씀을 잘 준비해서 전하고, 더 온전한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배를 드리는 마음가짐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태도는 어떠합니까? 그 학생들의 예배와 말씀에 대한 태도는 거룩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더 헌신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본받고 싶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믿음의 아들에게 주는 편지입니다. 바울은 말세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영적 분별력을 갖고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말세에는 경건하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는 고난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건하기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고난을 받는 것 때문에 경건하게 사는 것을 포기하지 말 것을 바울은 권면했습니다. 특히 말세를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힘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13절은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라고 합니다. 악한 사람들은 더 악을 행하고, 속이는 자들은 더 간교하게 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악함과 속임에 넘어가 악을 행하는 일이 현저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합니다. 경건하게 살기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유혹은 매우 달콤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형식주의와 외식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있으나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없습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형식만 갖추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온 맘과 뜻과 정성과 힘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혹시 악한 사람과 속이는 사람들에게 넘어가 악을 행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말세에 경건한 자로 살 수 있습니까? 악함과 속임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14절과 15절은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고 합니다. 말세에 경건하게 살지 못한 것은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확신한 일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면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갖게 하며,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습니다. 성경은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합니다. 영적인 성장을 경험할 수 있게 합니다. 본문의 ‘거하라’는 단어는 μένω(메노) 로 ‘그 상태를 유지하며 머무르다’ 는 뜻입니다. 바울은 배우고 확신한 것을 떠나지 말고 끝까지 지키고 머무를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과 2절은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고 합니다. 악하고 속이는 자들은 성도들을 유혹하고 유인하여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리고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게 합니다. 이에 양심이 마비되어 외식하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됩니다. 성경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믿음과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확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영적인 유혹과 미혹에도 믿음의 길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헌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누구에게서 성경을 배웠습니까? 첫째, 가정에서 배웠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5절은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합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디모데에게 어려서부터 가르쳐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가정은 신앙교육의 가장 좋은 장소며, 가정교육의 중심에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는 가장 좋은 영적인 모델이며 스승입니다. 둘째, 바울에게서 배웠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만난 것은 루스드라에서였습니다. 바울이 만났을 때 이미 그리스도인이요, 제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절은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라고 합니다. 그는 루스드라와 이고인온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믿음의 아들로 삼고 가르쳤습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좋은 스승과 제자로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복음과 교회를 위해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좋은 교사와 학생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하고 함께 동역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한 계속해서 복음과 믿음 안에서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은 약 1,500년 동안 약 40여 명의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을 한 권으로 묶은 것입니다. A.D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바울은 성경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16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라고 합니다. 지난 주일 예배를 마쳤을 때 아동부 학생에 저에게 성경은 누가 썼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신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성경의 절대 영감설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기원과 내용이 하나님의 감동 즉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인간이 성경을 기록했지만 인간이 저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저자입니다. 성령은 성경 기자들의 성격이나 성장 환경이나 지식, 직업이나 지위 등을 사용하셔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성경의 유기적 영감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성경의 기자들을 사용하셔서 말씀을 기록했기 때문에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성경의 무오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경험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으며, 모순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인간의 한계로 인한 것이지 성경 자체에 어떤 모순이나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라는 것과 성경에 전혀 오류가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 절대 표준이 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어떤 기능이 있습니까? 성경을 통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은 네 가지 기능을 통해 유익을 줍니다. 첫째, 교훈입니다. 교훈은 διδασκαλία(디다스칼리아)로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교리’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삼위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인간의 어떠한 존재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신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어떠한 공동체인가? 이 세상의 종말과 천국은 어떠한가? 를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책망입니다. 책망은 ‘ἐλεγμός’(엘레그모스)로 ‘신앙과 생활에 있어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바른 신앙인지를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를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척도로 하여 신앙과 행위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책망을 받으면 때로는 아프기도 합니다. 불편하기도 합니다. 이해할 수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책망에 순종으로 반응할 때 신앙과 생활에 유익이 있습니다. 셋째, 교정입니다. 교정은 ἐπανόρθωσις(에파노르도시스) 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는 것’입니다. 책망이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면, 바르게 함은 긍정적인 면에서 진리와 사랑으로 신앙과 행위를 바로 잡아야 바르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 안에 역사할 때 거룩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의 지배를 받을 때 죄를 떠날 수 있습니다. 악의 견고한 사슬을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넷째, 교육입니다. 교육은 παιδεία(파이데이아)로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경건하지 않은 것과 세상의 정욕을 버리게 하며,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 수 있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영적인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그래서 믿음에 부유하고 장성한 자가 될 수 있게 합니다. 성경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17절은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고 합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교정과 교육을 통해 유익을 줍니다. 그런 성경의 기능을 통해 얻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17절은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아직 온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훈과 책망과 교정과 교육을 받아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온전하다’는 것은 ἄρτιος(아르티오스) ‘부족함이 없다, 건강하다, 적절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고 기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모두 다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17절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개역성경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개역 성경에서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을 개역 개정에서는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단의 권세를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검입니다. 악한 마귀와 육신의 정욕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게 합니다. 성경에 대해 무관심하시고 상관이 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없는 거룩하고 온전한 성도도 없습니다. 성경은 신앙의 성장을 위한 영적 양식입니다. 천국을 향해 안내하는 이정표입니다. 악한 마귀와 죄와의 영적 전쟁을 위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말세에 경건하게 살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순종함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성경을 통해 더 경건한 자로, 더 성숙한 자로, 더 능력 있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