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1) 에베소서 1:3-14 우리가 함께 읽은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14절은 헬라어 원문에는 하나의 문장입니다. 영국의 탁월한 설교가인 존 스토트는 이 문장에 대해 “바울이 이 말씀을 구술할 때 그의 말은 마치 끊임없는 작은 폭포수와 같이 그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는 숨을 쉬지 위해 멈추지도 않았으며, 문장을 끝맺기 위하여 그의 말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라고 했습니다. 아미테지 로빈슨은 “마치 무한한 자유 속에서 자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기 위해 잠시 동안 높이 솟아 둥글게 원을 그리는 독수리의 예비 비행과 같았다” 라고 했습니다. 핀들레이는 본문을 에베소서로 들어가는 대문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웅장한 대문을 통과하여 본 서신에 들어간다” 했습니다. 에베서소는 교회론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라는 집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1절과 2절이 그 집 앞에 도착해서 노크를 한 것이라면 3절부터는 그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글을 쓰면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는 희열에 가득 찬 감격으로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하늘을 향해 들고 전율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이 받은 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바울이 감격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게 했던 복에 대해 함께 나눌 것입니다. 바울은 찬송했습니다. 3절a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라고 합니다. 바울의 찬송을 받으실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오직 우리의 찬송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것은 찬송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 목적이며 본분입니다. 항상 그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찬송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절b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라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받은 복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받은 복을 아는 자가 찬송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 복을 아는 자가 교회를 섬기며 충성할 수 있습니다. 우드로 크롤은 “하나님께 받은 복을 세는 데 집중하면, 다른 어떤 것도 계산할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429장은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라는 찬송입니다. 그 찬송가에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렴 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세상 풍파에 흔들려 마음이 약해 질 수 있습니다. 세상 근심 걱정에 눌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내려 주신 복을 세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신앙이 메말라 가고 원망과 절망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 받은 복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영적 기억 상실이 우리의 신앙과 삶을 무너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복을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특히 우리가 받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받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무엇입니까? 그 복이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그 복은 신령한 복입니다. 그렇다면 땅에 속한 복이 있으며, 신령하지 않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 땅에 속한 육신의 복을 구분하지만 부정적인 것으로 정죄하지 않습니다. 땅에 속한 복이 주는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땅에 속한 육신의 복이 주는 위험성은 무엇입니까? 예레미야 2장 7절과 8절은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과 학대를 받던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 진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옥한 땅으로 데려다가 그 땅에서 생산되는 온갖 좋은 것으로 먹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들어오자마자 거룩한 땅을 망쳐 놓았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끔찍스러울 정도로 더럽혀 놓았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관리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했습니다. 선지자들은 바알의 우상을 숭배하며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에게 땅에 속한 기름진 복을 주셨는데, 그들은 그 복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을 떠났으며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런 것을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광야의 길을 가는 것과 같은 삶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웠을 때에는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고 기도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먹고 살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나 환경이 되면 하나님을 더 찾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잘 섬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건강이 회복되고 재정의 여유가 생기자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을 찾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주일에 예배하지 않고 여행을 다니기도 합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교회보다는 운동장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전도하는 시간보다 TV를 보고 취미나 여가를 즐기는데 시간을 더 보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속한 육신의 복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교회를 멀리하고 신앙을 변질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때의 간절하고 절박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영적으로 무감각하고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땅에 속한 육신의 복이 주는 달콤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복이 주는 위험성을 깨달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아굴의 기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잠언 30장 7절에서 9절은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라고 합니다. 아굴은 하나님께 간청할 일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을 자신이 죽기 전에 이루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간구는 무엇입니까? “곧 허황한 거짓말을 멀리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너무 가난하게도 너무 부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일용한 양식만을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너무 배불러서 당신을 부인할까 두렵습니다. 반면에 너무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까 두렵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아굴에서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물이나 음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재물이나 음식으로 인해 하나님이 없는 것을, 하나님을 떠난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것을 조심했습니다. 우리에도 이런 기도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결단이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신앙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고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면하셨습니까? 마태복음 6장 31절에서 33절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합니다. 우리가 땅에서 살아가며 필요한 육신의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에 대한 것입니다. 즉 의식주의 문제 일 수 있습니다. 재물과 성공과 출세와 명예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있어야 하며 기도해야 할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염려로 인해 우리의 기도와 삶이 세상 사람들과 같아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의 복이 필요하다는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먼저 하늘의 복을 구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육신의 복이 아니라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 알기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라고 합니다. 그 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 복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그 복은 일반 은총으로서의 복이 아니라 특별 은총으로서의 복입니다. 그 특별 은총을 통해 받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3절에서 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복을 주시는 분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입니다. 표 1)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 구원 하나님께서(성부) | 선택 | 예정 | 양자 | 계획 | 그리스도 안에서(성자) | 속량 | 계시 | 기업 | 성취 | 성령으로(성령) | 듣고 | 믿어 | 보증 | 적용 |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예정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함을 입어 복음의 비밀을 통해 천국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듣고 믿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하셨으며 구원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시고 성령께서 적용하셔서 받은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구원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과 그 복은 무엇입니까? 신명기 33장 29절은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라고 합니다. 시편 133편 3절은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라고 합니다. 시편 32편 1절과 2절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합니다. 로마서 4장 7절과 8절은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복은 영생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정죄를 받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지 받지 않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하는 복은 구원입니다. 우리가 받은 최고의 복은 구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그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이에 에베소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가장 먼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과 헌신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알고 감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복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잊지 않아야 신앙과 헌신이 변질되거나 열정이 식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놀라운 하늘의 복, 신령한 복, 거룩한 복, 영적인 복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감사와 감격과 확신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복을 누리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그 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며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는 성도들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