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침체를 극복해야 합니다 열왕기상 19:5-18 우리는 3주에 걸쳐 엘리야를 통해 영적 침체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시간에는 ‘영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영적 전쟁을 결단해야 합니다. 둘째 시간에는 ‘영적 침체를 조심해야 합니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영적 침체는 영적 안일함과 자만에 빠지거나 계속되는 고난으로 인해 올 수 있습니다. 영적 침체를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으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런 엘리야도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 무기력과 절망감을 느끼고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영적 침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영적 침체를 경험했던 엘리야도 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으며, 더 위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영적 침체를 극복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침체도 극복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영적 침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게 하셨습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활동을 하던 엘리야는 남유다의 남쪽에 있는 브엘세바까지 도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하룻길을 더 가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나무 아래에 앉아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한탄했습니다. 그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5절과 6절은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한탄을 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천사가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깨웠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가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숯불에 구은 떡과 물 한 병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마시고 다시 누었습니다. 다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7절과 8절은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또 다시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했습니다.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염려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일어나 먹고 마시고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40일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걸어서 마침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라는 것을 통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천사가 엘리야를 어루만졌다는 기분이 좋아지도록 달래거나 아픈 데를 감싸 주었다는 것입니다. 천사의 말과 행동과 마음은 가장 다정하고 부드러운 것이었습니다. 이는 엘리야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염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필요한 것이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길을 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굶주린 배를 채우셨으며, 갈한 목을 축이게 하셨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육체와 마음을 만져 주셨습니다. 인간은 육체와 마음과 영혼은 유기적인 연합체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상태가 때로는 영적인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영적 침체를 극복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해 먼저 육체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하고 연약한 마음을 치유해 주십니다. 엘리야가 먹은 떡과 마신 물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장 35절과 55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고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주신 떡과 물로 영적 침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육체와 마음이 회복되었습니다. 다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영적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을 통해 영적 침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영적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거룩한 보혈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떡과 물이 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영적 침체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영적 침체에 빠지자 어떻게 했습니까?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생명을 위해 브엘세바까지 도망을 했습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사명을 버리고 남유다의 남쪽 끝까지 도망을 한 것입니다. 영적 침체에빠진 선지자 요나도 하나님을 피해 다메섹이 아니라 다시스로 도망하려 욥바로 가서 배를 탔습니다. 이렇게 영적 침체에 빠지면 사명의 버리고 떠나게 됩니다. 헌신의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만약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직분에 온전히 헌신하지 않고 있다면 영적 침체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영적 침체를 극복하고 사명을 감당하고 헌신을 회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심으로 육체와 마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깨트렸으나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불 후에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 가운데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13절은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수건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렸습니다(출 34:33).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천사들도 날개로 자기의 얼굴을 가렸습니다(사 6:2). 얼굴을 가리는 행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고 말씀을 들은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종종 질문을 통해 영적 교훈과 도전을 하셨습니다. 타락한 아담을 향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라고 하셨습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을 향해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창4:9)” 라고 하셨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야곱을 향해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32:27) 라고 하셨습니다. 그 질문들은 하나님이 그들이 어디 있는지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적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향해 어떤 질문을 하셨습니까? 그를 향해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북이스라엘을 떠나 멀리 도망하여 굴속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게 하신 선지자로서의 사명에 대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엘리야의 대답은 매우 실망스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열심히 특별했으며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제단을 헐었으며, 많은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했고 자기를 찾아 생명을 빼앗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는 더 이상 선지자로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환경과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로서의 사명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을 본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환경과 상황에 굴복해서 사명에 헌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영적 충만으로 환경과 상황을 극복하고 사명에 헌신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어떤 사명을 주셨습니까? 15절과 16절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고 합니다. 엘리야의 사명은 다메섹의 하사엘에게 기름 부어 아람 왕을 삼는 것입니다.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 부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영적 침체를 극복하게 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영적 침체를 벗어나 영적 충만과 부흥을 경험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게 맡은 직분과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악한 마귀와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침체를 극복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사역과 직분에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8절은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바알에게 무릎 꿇거나 경배하지도 않았으며 입 맞추지도 않은 사람 7천명을 남겨 두셨습니다. 엘리야는 혼자 우상 숭배자들과 싸우며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헌신할 동역자들을 남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혼자서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헌신할 동역자들을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헌신하는 자들의 귀한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을 감당했으면 합니다. 함께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영적으로 충만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영적 승리자로 살 수는 없습니다. 영적으로 탈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 침체의 늪에서 헤매며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소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엘리야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를 반드시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시며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이 말씀이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일어나 먹고 마셔라 네가 갈 길이 아직도 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