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침체를 조심해야 합니다 열왕기상 19:1-5 요즈음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의 종류는 무엇입니까?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제가 어렸을 때보다 위인전을 읽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에만 해도 위인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감동과 도전을 받고 그런 사람이 되려는 결심도 하곤 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믿음의 위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믿음의 위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인 엘리야였습니다. 18장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까?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850명의 선지자들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엘리야가 기도하자 삼년 동안 비가오지 않던 이스라엘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는 매우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19장에서 엘리야는 매우 연약한 사람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의 위협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엘리야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1974년 임상 심리학자인 프로이덴버거는 본문에 나타난 엘리야의 상태를 ‘엘리야 증후군’(Burn-out syndrome : 탈진 증후군)이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심각한 탈진과 침체 상태를 빠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는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은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의욕도 능력도 없습니다. 가정생활을 할 의미와 가치도 잃어버립니다. 학교를 다닐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무기력과 무력함에 고통스러워하며 불안과 절망감으로 인해 탈진과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탈진과 침체를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에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침체가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적 침체에 깊이 빠지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가정이나 학교생활에서 경험하는 탈진과 침체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즉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영적 충만과 영적 부흥은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영적 침체에 빠지면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직장과 가장과 학교생활에서 겪는 침체와 탈진을 영적 침체와 관련시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충만과 영적 부흥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영적 침체를 극복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엘리야를 통해 영적 침체에 빠지는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첫째, 영적 안일함입니다. 엘리야가 우상숭배자들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엘리야에게 있어 신앙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선지자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영적 긴장감을 갖지 않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간절한 기도를 합니다. 절박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되면 영적 안일함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도 사라지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영적 긴장감을 상실하고 너무 편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 때 바로 영적 침체가 찾아 올 수 있습니다. 둘째, 영적 자만입니다. 엘리야는 홀로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과 싸워 이긴 것입니다. 그것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부심이 자만심이 되면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말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10절은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특별했던 사람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언약을 버렸지만 나만 언약을 지켰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제단을 하고 선지자들을 죽였지만 나는 하나님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은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 합니다. 우리가 얻고 이룬 모든 것은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특별한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앞세우면 영적으로 자만하고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셋째, 계속되는 고난입니다.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죽이면 더 이상 고난이나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합은 엘리야가 행한 일과 우상의 선지자들이 죽은 것을 이세벨에게 말했습니다. 이세벨이 어떻게 했습니까? 2절은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고 합니다. 아합의 말을 들은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사람을 보내 “엘리야야, 네가 나의 예언자들을 죽인 것처럼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이 내리는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 라고 했습니다. 이제 엘리야는 다시 우상숭배자들 싸움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살해 위협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 침체에 빠지는 경우도 계속되는 고난으로 인한 것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럽게 병마와 싸워 치유되었는데 다시 더 심한 병에 들기도 합니다. 또 다른 경제적인 것으로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고난이라 생각하고 모든 힘을 다 쏟았는데 또 다른 고난이 거대한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 올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계속되는 고난과 환난을 겪으면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직장생활에서, 기정생활에서, 학교생활에서 심한 탈진과 침체에 빠진 분이 있습니까? 영적 침체에 빠지신 분이 있습니까? 그 원인은 무엇에 있습니까? 성령께서 지혜를 주셔서 원인을 발견하게 하시고, 회복의 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영적 침체에 빠진 사람에게는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엘리야에게 나타난 영적 침체의 현상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사람 때문에 사명을 버리게 됩니다. 3절은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이세벨리 보낸 사자를 통해 자신을 죽이려는 계획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을 보니 도저히 이세벨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일어나 도망을 했습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남유다 맨 아래에 위치한 브엘세바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사명을 받은 곳에서 가장 멀리 도망을 한 것입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면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고 헌신의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사람을 사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혹시 사람으로 인해 헌신과 사명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사명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사명을 다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4절은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함께 간 사환을 남겨두고 광야로 들어가 하루 길쯤 갔습니다. 그는 로뎀 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소원하며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이제 더 이상 살 수가 없습니다.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조상들과 똑같이 죄 많은 사람으로 이렇게 굶주려 죽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살아갈 힘과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에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했습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면 나타나는 것은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어떤 수고나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죽여 달라는 엘리야의 심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을 살려 달라는 것입니다. 살아갈 힘과 소망을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만났을 때 죽기를 소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낙심하고 절망하는 자가 아니라 기도하고 소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항상 혼자라고 생각합니다. 10절과 14절은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자신만 홀로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 오바댜가 백 명을 오십 명씩 나누어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주어 살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입을 맞추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주실 것입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면 나타나는 것은 나만 혼자 인 것 같습니다. 혼자 고난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가장 심한 것 같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고 함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도울 사람을 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십니다. 결코 떠나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고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야고보서 5장 17절과 18절은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고 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성정, 즉 본성과 마음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엘리야가 기도하자 비가 오지 않았으며, 기도하자 비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엘리야도 영적 침체를 경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 침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영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계속되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사람 때문에 사명의 자리에서 멀어져 있습니까?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습니까? 혼자라는 생각에 힘들고 고통스럽습니까? 그렇다면 영적 침체에 빠졌는지 살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탈진과 침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충만과 영적 부흥 가운데 있으면 그 탈진과 침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영적 침체가 아니라 영적 충만과 영적 부흥을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