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기도의 사람 : 사랑과 신앙 예화) 성서침례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김남주총장은 춥고 배고픈 고아원 시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해 살아왔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참 많이 울었다. 배가 고파서 울었고 너무 추워서 울었다. 외로워서 서러워서 보고 싶어 울었다. 너무너무 힘들어서 울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오늘은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는 자로 헌신했던 느헤미야에 대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는 눈물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눈물과 기도를 통해 교회를 위한 헌신을 결단하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느헤미야는 누구입니까? 느헤미야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위로’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황무함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던 백성들을 위로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하심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린도후서 1장 6절은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 합니다. 그는 성도들이 큰 환난을 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또 지금 환난을 당하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는 것은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위로가 얼마나 풍성한 것인가를 기억하게 하심으로써 환난을 견디어 나갈 힘을 주시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도 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통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위로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지파에 속한 하가랴의 아들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포로들에게 비교적 많은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집을 짓고 사업도 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로 허락되어 비록 성전은 세우지 못했지만 함께 모여 율법을 듣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도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환경과 상황이 좋아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환경이나 상황에 지배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으로 환경과 상황을 극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혹시 육체적인 질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환경적인 것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더 기도하고, 믿음의 진보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서의 배경은 어떤 것입니까? 느헤미야는 포로였지만 바사 왕 아닥사스다 왕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에 있었습니까? 1절은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수산 궁에 있더니’ 라고 합니다. 이는 B.C. 445년 11월과 12월경이었습니다. 그는 수산 궁에 있었습니다. 수산은 엘람의 수도로 을래 강 상류에 위치한 비옥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아닥사스다 왕은 겨울에 사용할 왕궁을 지어 놓았습니다. 느헤미야가 수산 궁에 있을 때 누가 찾아왔습니까? 2절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라고 합니다. 느헤미야의 친 형제로 동생이었던 하나니가 찾아왔습니다(참고 7:2) 동생 하나니를 만난 느헤미야는 무엇을 물어보았습니까? 2절은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이라고 합니다. 그는 동생에게 바사에 포로로 잡혀 오지 않은 백성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바사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술 맡은 관원은 왕의 음식을 관리하는 직분으로 왕의 대단한 신뢰를 받아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관심과 마음은 항상 이스라엘과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이사야 5장 12절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합니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의 관심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에 있습니까? 우리의 관심이 있는 것과 마음이 있는 곳이 우리의 신앙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의 관심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의 질문에 대해 동생 하나니는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3절은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고 합니다. 하나니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느헤미야에게 전해준 소식은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오지 않았던 사람들과 포로에서 귀환을 한 사람들은 큰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멸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문들은 불에 타 버려져 있었습니다. 전에 느부갓네살은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예루살렘 성전을 포함한 모든 성을 불태워버렸습니다. 그 후에 스루바벨을 중심으로 바벨론에서 1차 귀환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B.C 587).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은 준공을 했지만, 예루살렘 성과 성벽을 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귀환을 하여 성벽재건을 위한 시도를 했지만 방해로 인해 성벽은 허물러진 채로 있었으며, 성문은 불에 탄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B.C 457). 우리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보면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으며 모든 것이 훼파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과 성벽을 재건할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축복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죄를 짓는데 사용하고, 인간의 마음대로 사용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 때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재물이 있을 때, 건강이 있을 때, 헌신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섬기며 세우는 일에 있는 힘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니가 전해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눈물을 흘렸습니다. 4절은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라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동생이 전해 준 상황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여러 날 동안 울었습니다. 슬퍼서 음식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눈물은 예루살렘을 향한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바울도 성도들을 위해 울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1절은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고 합니다. 그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삼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를 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눈물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리던 분들의 가르침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면 좋지 않은 소식이나 형편을 들으면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거룩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가족을 사랑하십니까? 영혼을 사랑하십니까?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울어야 합니다. 때로는 감사해서 울고, 때로는 안타까워서 울어야 합니다. 다윗은 많은 눈물을 흘렸던 사람입니다. 그런 다윗의 눈물을 하나님은 닦아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많이 울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기도를 했습니다. 4절은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라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주저앉아 수일 동안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울고 있지만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형편에 대해 안타까워서 우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성도들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할 수 있기 위해 값비싼 대가가 지불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그 결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반면에 특권과 축복에는 의무와 사명이 있습니다. 기도가 특권이요 축복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만약 기도생활을 소홀하고 있다면 그것은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할 의무와 사명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는 무너지고 불에 타 버려져 있는 예루살렘 성문과 성벽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수 일 동안 울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예전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으면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교회를 더 온전하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의 눈물로 교회를 섬기며, 믿음의 기도로 교회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눈물과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