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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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죽음으로 고백한 사랑-2009.04.04 2023-06-0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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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고백한 사랑

요한일서 4:9-11
 

예화) 사랑하니까?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못생긴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서는 총각이 장가를 가려면 결혼 지참금으로 소 한 마리를 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그 처녀에게 청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이는 들어 노처녀가 되었고 볼품은 더욱 없어졌습니다. 이제 결혼은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최고의 신랑감이 나타났습니다. 추장의 외아들이 청혼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소 여덟 마리나 지참금을 가지고 청혼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결혼을 했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부의 얼굴은 몰라보게 아름다워졌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신부는 신랑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왜 나를 선택했습니까?’‘왜 소를 여덟 마리나 가져왔습니까?’ 신랑의 주저 없이 ‘사랑하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못생겼다고 했는데, 그 여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결혼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면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한 여자 성도님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친정이 잘 살지 못해도,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별로 잘나지 못하고, 예쁘지 못해도 결혼을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것을 지금도 믿고 있습니까? 이것을 믿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지혜 있는 자였기 때문입니까? 능력 있는 자였기 때문입니까? 좋은 가문의 자녀였기 때문입니까? 만약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조건이었다면 과연 누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조건이나 능력이나 가문을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성도가 겸손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항상 감사와 감격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죽음으로 고백하셨습니까? 죽음으로 고백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본문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9절은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보내셨습니까?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화려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버려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로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10절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합니다. 화목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그것에 감사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진노의 자녀가 아닙니다. 더 이상 저주 아래 놓여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화) 아이를 살린 엄마

지난 208년 5월 쓰촨성 대지진 당시 베이촨현에 서너 달밖에 안된 갓난아기의 생명을 살리고 자신은 숨진 20대 여성의 일화가 중국 사람들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아이를 구조했을 때, 아기엄마는 무릎을 꿇고 두 팔로 벽을 지탱한 채 품속에 아이를 넣고 숨져있었습니다. 덕분에 아이는 발견당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두 팔로 벽을 지탱한 채 아이를 살린 엄마의 시선 옆에 죽어가면서 아기에게 남기려 휴대폰에 남긴 메시지가 현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아가야, 네가 살아남게 된다면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꼭 기억해다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죽음으로 고백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셨습니다. 그것이 갈보리 언덕 위에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는 성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회복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찬식을 하기 전에 동영상을 보겠습니다.

이것을 보시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셨으면 합니다. 그 고난은 우리를 향한 죽음으로 고백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