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꾼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3:1-13 예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교회 안에서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훼방꾼과 구경꾼과 일꾼입니다. 훼방꾼은 교회 안에서 계속해서 갈등과 문제를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구경꾼은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판단하고 비판하며 책망하는 사람입니다. 일꾼은 교회에서 받은 직분과 사역에 최선을 다해 겸손히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훼방꾼이 많으면 갈등과 문제가 있는 교회가 됩니다. 구경꾼이 많으면 부정적인 분위기에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일꾼이 많으면 사명을 감당하며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됩니다. 우리 교회에 훼방꾼과 구경꾼이 아니라 일꾼이 많아 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훼방꾼과 구경꾼이 아니라 일꾼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바울의 고백을 생각하며 ‘내가 일꾼이 되었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바울처럼 일꾼이 되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바울처럼 일꾼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일꾼으로 허신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바울의 변화와 고백은 무엇입니까? 7절은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에 바울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비방했으며 교회를 박해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폭행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풍성한 믿음과 사랑으로 인해 구원을 받고 직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직분자로 충성스러운 헌신을 했습니다. 그가 일꾼이 된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바울은 철저하게 복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예루살렘에 끌어 오기 위해 가던 중에 박해하던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만남을 통해 구원을 받고 일꾼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7절에서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라고 합니다. 그가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바울을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만나시고 구원하시고 일꾼을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바울에게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 합니다. 그 은혜로 인한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을 일꾼이 되게 하셨으며, 일꾼으로 헌신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더 많은 수고를 했지만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은 일꾼입니다. 구원을 받은 것도 은혜이며, 일꾼이 된 것도 예수님의 능력과 은혜입니다. 그 능력과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하는 자가 일꾼이 되어 일꾼으로 헌신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무엇을 위한 일꾼이 되었습니까? 첫째, 예수님의 일을 위한 것입니다. 1절과 2절은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일을 위해 이방인을 위해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은혜의 경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일꾼으로 삼으셔서 거룩한 사역을 맡기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이에 때가 되자 그를 구원하시고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일꾼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무엇이 중요합니까?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보다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의 동기와 목적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많은 성과를 얻었을지라도 주인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면, 주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일꾼의 수고와 성과는 의미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일은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예수님의 일인가? 예수님을 위한 일인가? 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어떤 직분이 있습니까? 어떤 사역을 하고 있습니까? 그 직분과 사역이 예수님을 위한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한 것입니다. 8절과 9절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일꾼으로 삼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 즉 인간의 생각과 지식으로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경륜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은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한 그릇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물론 바울이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이 주로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이방인들이었으며, 복음을 전한 곳은 이방 지역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은 복음의 일꾼입니다. 그 대상과 지역을 다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일꾼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교회를 섬기는 일을 위한 것입니다. 10절과 11절은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그가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세워진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시기 원하셨습니다. 복음을 통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은 바울의 사명일 뿐 아니라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존재 의미와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역에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열방을 향해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바울이 세우기 원한 교회는 무엇입니까? 6절은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고 합니다. 비록 이방인들일지라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 없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고 천국을 유업으로 얻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 받은 자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시고 함께 천국을 사모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골로새서 1장 24절과 25절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고 합니다.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 된 교회를 위해 육체에 채우기 원했습니다. 바울은 교회의 일꾼으로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이루기 위해 교회의 일꾼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일꾼으로 헌신하고 수고하기 위해서는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일꾼으로 직분과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불편하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재물과 마음과 육체의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원망하고 불평하며 헌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섬기는 것이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것이 은혜와 축복으로 생각하고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일꾼으로 어떻게 헌신했습니까? 그가 일꾼으로 헌신하기 위해 갖고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겸손입니다. 8절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일꾼이 된 것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얼마나 겸손한 일꾼으로 헌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겸손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겸손한 자가 일꾼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꾼으로 헌신하시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겸손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낮추며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자가 예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 모두 겸손한 자가 되어 일꾼으로 함께 예수님과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확신입니다. 12절과 13절은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에 교회를 위한 환난에 대해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바울의 환난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영광이라고 합니다. 바울에게 있던 분명한 확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일꾼으로 삼으셨다는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난과 고난도 바울의 헌신을 포기하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며 기도하며 일꾼으로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바울은 고난이 영광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에 성도들을 향해 자신이 당하는 환난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 것을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일꾼으로 필요한 것은 확신입니다. 우리를 일꾼으로 삼으셨다는 소명의식입니다. 또한 일꾼으로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고난이나 환난이 오히려 영광이며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 확신이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일꾼으로 살 수 있게 합니다. 그 분명한 확신을 갖고 예수님과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서 훼방꾼이나 구경꾼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일꾼이 많은 교회를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일꾼이 많은 교회에 부흥의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일을 하는 일꾼, 복음을 전한 일꾼, 교회를 섬기는 일꾼이 되었으면 합니다. 겸손한 마음과 견고한 확신을 갖고 일꾼으로 헌신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일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과 사역을 은혜로 받고 감사함으로 헌신하는 일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