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희망입니다. 마가복음 5:25-34 예화) 희망의 소리 지난 11월 4일 오후 11시에 봉화군에 있는 아연 채굴 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된 광부 2명이 살아서 가족 곁으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221시간 동안 광산에 매몰되어 믹스 커피와 지하수를 마시면서 생존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갱도 내에서 구조 당국의 발파 소리를 들으며 희망을 갖고 서로 의지하면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갱도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에게 생의 의지와 희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낙심과 절망의 상태에서 희망을 품게 만든 소문을 들었던 여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이 들었던 소문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도 여인이 발견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여인은 누구입니까? 25절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라고 합니다. 그 여인은 십이 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혈루증은 만성 출혈증으로 여자가 하혈하는 병이었습니다. 그 병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나아갈 수도 없었으며, 대개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습니다. 사회와 종교와 가정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피하고 멀리했습니다. 그런 병에 걸린 여인은 십이 년 동안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십이 년 동안 투병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겪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절망스러운 것은 무엇입니까? 26절은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라고 합니다. 그 당시 혈루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방법은 100가지가 넘었습니다. 이는 특별하게 치료하는 방법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는 난치병이었습니다. 그 병을 십이 년 동안 앓았다는 것은 더 이상 치유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로 생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십이 년 동안 혈루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여인은 많은 의사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들의 치료 방법에 병든 육체를 맡겼습니다. 의사들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육체에 고통을 가했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돈을 다 허비했습니다. 여인에게 남은 것은 빈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병이 심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여인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절망뿐이었습니다. 이제는 죽기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소유로는 절대로 해결하고 극복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그런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그런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주위에 그런 분은 없습니까? 삶의 고통만 있습니다. 통장은 텅 비어있습니다. 문제는 해결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럴 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놓고 싶지 않을까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인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희망은 무엇이었습니까? 27절과 28절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고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여인의 귀에 들린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헬라어 εὐαγγέλιον(유앙겔리온)으로 기쁜 소식, 혹은 복된 소식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치유하기 위해 모든 재물을 잃고 오히려 몸이 만신창이가 된 여인이 들었던 가장 기쁜 소식이 예수님의 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모든 병을 치유하시는 분이시며,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거절하지 않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여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27절과 28절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 자신 같이 부정한 사람이 예수님의 앞에 나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따라가다가 뒤에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을 수 있을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믿음이 생깁니까? 로마서 10장 17절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복음을 전해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으면 예수님에 관해 관심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인생의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소문을 그 여인에게 들려주었을까요? 예수님의 치유 역사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 역사를 들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누가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소문을 전해야 할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옷을 만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9절은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고 합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뒤에서 옷깃을 만났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혈루 근원이 곧 마르게 되었습니다. 여인을 십이 년 동안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혈루증이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피를 흐르게 하던 근원이 마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증상이 호전된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혈루증으로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문제의 근원이 해결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던 문제의 근원이 해결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해결이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습니다. 이에 무리를 둘러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워 싸고 밀치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둘러보셨습니다. 그 여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여인은 이미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아마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정한 여인이 거룩하신 예수님을 밀쳤기 때문입니다. 허락도 받지 않고 옷을 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인의 오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떨고 두려워하는 여인을 향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34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하신 말씀 중에 중요한 세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과 평안과 건강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남으로 얻은 축복이었습니다. 그것은 절망 가운데 있는 여인이 들은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구원입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두 가지 관점에서 언급합니다. 먼저는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다음은 구출을 받는 것입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혈루증으로부터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는 영혼과 육체에 구원의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영육 간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육신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둘째, 평안입니다. 그 여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불안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너무 불안한 것입니다. 여인은 하루하루를 불안해하며 걱정하며 염려하며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인을 향해 평안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이제는 근심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셋째, 건강입니다. 여인은 건강해졌습니다. 더 이상 혈루증으로 인해 아파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혈루증은 여인을 고독하게 만들며,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여인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전에서 예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교제를 나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병에서 나음을 입은 것은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 평안을 얻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소문, 복음을 들은 여인이 받은 축복이었습니다.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은 고통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은 예수님을 만날 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마지막은 하나님에게 있어 시작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들어야 할 것은 복음입니다. 그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이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듣고 믿으면 구원과 평안과 건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절대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며 마음에 평안을 주며 육체의 건강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사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질병으로 인해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들어야 할 소식은 예수님의 소문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희망입니다. 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