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감사하라 시편 107:1-9 예화) 목적이 이끄는 삶 중에서 “가장 깊은 경지의 예배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험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려움 소에서도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며,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성을 점검하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할 때에는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성숙할 때에는 모든 일에 불만과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권면의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시편 107편은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시인은 반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고백과 권면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시인은 우리의 감사를 받으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합니까? 1절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합니다. 시인은 감사를 받으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셨기에 좋은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습니까? 때로는 원망하고 불평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낙심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과 상황과 환경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인자하신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절은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고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였습니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원하고 한결같은 사랑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은 고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지라도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면 불행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반면에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면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며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며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았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에 있습니까? 첫째, 구원하시고 모으셨습니다. 시인은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생활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세 번에 걸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1차는 B.C 605년에 다니엘을 포함한 귀족들이 포로로 잡혀갔으며 성전의 기구들이 약탈을 당했습니다. 2차는 B.C 597년에 예루살렘의 백성들과 권세 있는 자들을 포함한 만 명이 포로로 잡혀갔으며 성전 및 왕궁의 보물이 약탈을 당했습니다. 3차는 B.C 586년에 비천한 자들을 제외한 많은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으며 왕궁과 성전은 불에 타고 예루살렘 성벽은 붕괴되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 번에 걸쳐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1차는 B.C 537년에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 재건을 위해 귀환했습니다. 2차는 B.C 458년에 에스라를 중심으로 성전 중심의 신앙공동체 회복을 위해 귀환했습니다. 3차는 B.C 444년에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벽 중건과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귀환했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2절은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속량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속량은 값을 지불하고 도로 찾으며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종노릇 하던 이스라엘을 속량, 즉 구원하셨습니다. 포로에게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구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속량의 영적 의미는 죄인의 구원에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로마서 6장 6절과 7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고 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악한 습관을 따라 살며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를 따라 살았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 우리의 옛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새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죄의 종으로 살지 않고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는 마귀의 종이나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속량하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3절은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속량하시고 모든 지방에서 므으셨습니다. 이는 속량함을 받은 이스라엘을 신앙공동체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은 성전 재건을 재건하고 말씀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서의 온전한 회복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린도전서 1장 2절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라고 합니다.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자들이 되어 성도라 부르심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지역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신앙공동체이며 예배 공동체입니다. 예화) 국민일보 더 미션란(2022년 10월 8일)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예배로 성도 간의 교제와 나눔이 급격히 줄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지난 5월 교단 산하 담임목사 500명과 장로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회가 직면한 어려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도 간 교제 및 공동체성 약화’가 68.8%로 가장 높았다. 엔데믹에 접어들고 교회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성도들의 유대감을 높이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성 회복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부족하고 연약한 것은 공동체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 교회에 속한 자라는 공동체 의식을 더욱 약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엔데믹 시대에 가장 힘써야 하는 것은 성도들이 깊은 유대감과 친밀감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회 내 소그룹의 활성화입니다. 우리 교회도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목장 모임과 전도회 모임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모임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함께 격려하며 성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목장 별 모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모임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함께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교회에 속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시인은 좋으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바벨론에서의 귀환, 즉 속량하심과 모으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생활을 할 때 일어난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광야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4절과 5절은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광야 사막 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광야 길에서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제대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마실 것을 마시지 못했습니다. 이에 영혼의 기력을 잃고 피곤해졌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6절과 7절은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길에서 방황과 결핍과 피곤함으로 인해 근심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며 그들을 고통에서 구해 주셨으며 바른길로 인도하셨고, 정착하여 살 만한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셔서 먹게 하셨으며,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을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셔서 정착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광야 같은 인생길을 가면서 방황과 결핍과 피곤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의 방황과 결핍과 피곤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근심하고 걱정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심으로 고통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셔서 영원히 거할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방황과 결핍과 피곤함에서 건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근심을 안심으로, 고통을 평안으로 바꾸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만족과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시인은 좋으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고백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 감사 찬송할 이유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8절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속량을 받은 것과 광야 사막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변함없는 사랑과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무엇을 주십니까? 9절은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갈망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굶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진정한 만족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있습니다. 전도서 5장 10절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라고 합니다. 우리의 영혼에 만족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육체의 정욕을 위해 집착하며 탐욕의 노예로 살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의 영혼에 만족함이 있으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풍성함과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성령 충만, 은혜 충만함으로 채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속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감사를 회복하고 더 만족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더 성숙하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