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2) : 과정도 방법도 선해야 합니다 창세기 27:1-20 예화) 튀르키예의 지진이 주는 교훈 최근에 지진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튀르키예(터키) 는 81개 주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하타이주는 이번 대지진으로 가장 많은 피해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타이 주의 에르진은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보이지 않고 차량들은 막힘없이 다니고 있습니다. 거리를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탄 시민들도 눈에 띄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에르진이 무사할 수 있었던 배경엔 불법 건축물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고수한 에르진의 외케슈 엘마솔루 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지진에 견딜 수 있는 내진 설계가 되어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해 불법 건축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안전한 건물을 짓기 위한 과정과 방법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종종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 임명 동의나 선출을 필요로 하는 공직자의 자질과 능력을 사전에 검사하는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실감합니다. 그들은 성공이라는 목적을 위해 악한 방법과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목적을 위해 정당한 과정과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삭과 에서, 리브가와 야곱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선한 과정과 방법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은 것을 이루려는 인간의 실수와 실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며 목적이 선하면 방법과 과정도 선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으면 합니다. 선한 방법과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들의 실수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이삭과 에서입니다. 1절과 2절은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라고 합니다. 이삭의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삭의 나이는 137세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가 나이가 많고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인간적인 조급함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며 분별력이 흐려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조급함과 분별력 상실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은 과정과 방법을 통해 에서에게 장자권을 물려 주려고 시도하게 했습니다. 그는 180세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에서에게 장자권을 물려 주려고 시도를 하고 43년 정도를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조급함과 분별력의 상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온전하지 않을 때 조급해 할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고 이루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어떻게 에서에게 장자권을 주려고 했습니까? 3절과 4절은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고 합니다. 에서는 성장하여 뛰어난 사냥꾼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사냥 기구인 활과 화살통을 가지고 들판에 나가 사냥을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맛있는 요리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죽기 전에 에서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복을 빌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삭이 좋아하는 고기를 먹고 장자권의 복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장자권을 물려 줄 때는 가족을 모두 불러 잔치를 열고 아버지가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리브가와 야곱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자권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도 없었으며, 바꿀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장자권을 에서에게 줄려고 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통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에서가 장자권을 야곱에게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에서에게 장자권을 물려 주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장자권을 물려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물려 주려는 방법은 옳은 것이어야 했습니다. 육신적인 출생에 있어서는 에서가 장자였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는 야곱이 장자였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아닌 야곱이 장자가 되는 것을 인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선택했습니다. 영의 생각이 아니라 육신의 생각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이냐? 내 뜻이냐? 육신의 생각이냐? 영의 생각이냐? 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 뜻을 따르고, 육신의 생각을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생각이며 선택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방식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리브가와 야곱입니다. 8절에서 10절은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고 합니다. 에서는 아버지 이삭을 말을 듣고 장자권을 얻기 위해 사냥을 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삭과 에서가 하는 말을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자신이 하는 말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면 남편 이삭을 위해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줄 것이니, 그것을 아버지께 드리고 장자권의 축복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권의 축복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남편의 뜻을 따를 것인지 결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리브가는 남편 이삭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리브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야곱에게 장자권을 받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태중에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에서가 죽 한 그릇으로 야곱에게 장자권을 판 것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으로부터 장자권의 축복을 받는 방법은 옳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과정과 방법은 선한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이었습니다. 리브가의 말을 들은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11절과 12절은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라고 합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형은 털이 많은 사람이지만, 자신은 매끈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삭이 자신을 만져보면 탄로가 나고 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을 향해 리브가는 어떻게 했습니까? 13절과 14절은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고 합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향해 저주는 자신이 받을 것이고 복은 야곱이 받으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요구대로 새끼 양을 끌고 왔으며 리브가는 남편 이삭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리브가는 에서의 향취가 있는 좋은 옷을 가져다가 야곱에게 입히고 염소 새끼의 가죽을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혔습니다. 이삭이 즐기는 별미와 떡을 야곱의 손에 들고 들어가게 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19절과 20절은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라고 합니다. 야곱은 어미니 리브가가 만들어 준 별미를 가지고 들어가 아버지 이삭이 명령하신 대로 별미를 만들어 가져왔으니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장자의 축복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생각한 것보다 빨리 사냥하고 별미를 만들었다고 했으며, 야곱은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냥감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모든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그는 형 에서도 아니었습니다. 사냥을 하러 간 적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별미를 만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거짓말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자신의 거짓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는 약간의 양심이 살아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신앙을 고백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장자권의 복을 받기 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하지 않은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을 통해 어떤 교훈과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는 장자권의 복을 받기 위해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했습니다. 이는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악을 행했습니다. 사람에게 진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고 진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번 시작한 거짓말을 야곱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더 많은 거짓말을 해야 했으며, 더 치밀하고 간교하게 악을 행해야 했습니다. 야곱이 장자권을 받으려는 것은 거룩한 열심이며 열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과 방법은 선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장자권을 얻어야 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으로는 에서가 장자지만 영적으로는 야곱이 장자라는 것을 태중에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면 인내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적절한 때에 하나님께서 장자의 복을 주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인간적인 조급함이 때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맞추는 자로 살았으면 합니다. 둘째,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실해야 했습니다. 이삭이 에서가 주는 별미를 먹고 장자의 복을 해 준다는 말을 들은 리브가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해 이야기 하고 설득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와 야곱은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속이는 것부터 했습니다. 진실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실한 것은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까? 선한 계획과 목적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합니까? 선한 과정과 방법을 통해 이루어야 합니다. 진정한 성공과 행복은 선한 계획과 목적을 선한 과정과 방법을 통해 이루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적을 세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을 통해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