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1) : 최고가 되고 싶은 사람 창세기 25:19-34 예화)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예전에 유행했던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가 있었습니다. 한 개그맨이 술에 잔뜩 취한 채 경찰서에 끌려와 “국가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느냐?”며 소리를 지르다가, 뜬금없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라고 합니다. 그 멘트는 사회 풍자적인 것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 세상은 1등만 기억하고, 1등에게만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최고가 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인생의 낙오자로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만 1등이 되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어 할까요? 우리 안에는 1등, 혹은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은 없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최고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이요 요셉의 아버지 야곱입니다. 그는 최고가 되고 싶어 몸부림을 치던 사람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사람입니다. 그런 야곱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연민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사야 41장 14절은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고 합니다. 야곱은 버러지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벌레와 구더기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구속하셔서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 즉 이스라엘 민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이번 주일부터 야곱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버러지와 같은 야곱을 하나님이 어떻게 변화시키셨는지? 그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손길을 발견하고 경험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야곱과 같은 거룩한 변화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무엇에서 야곱이 최고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첫째, 야곱의 출생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았으며 이삭은 사십 세에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며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인 리브가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21절은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라고 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결혼을 했지만 임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태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소망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기 위해 꿇는 무릎에 강력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이삭의 간구로 인해 리브가가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들 쌍둥이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리브가가 아들을 출산을 했을 때 이삭의 나이는 예순 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20년간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이삭의 기도는 어떠한 기도였습니까?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인내의 기도였습니다.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우리에게 간절한 믿음과 인내와 소망의 기도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0년 만에 잉태된 태아가 태중에서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이에 리브가는 어떻게 했습니까? 22절은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라고 합니다. 리브가가 하나님께 물은 것은 육체적 괴로움에 대한 하소연이며, 혹시 유산할지 모르는 불안함이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육체와 마음과 영적인 이유로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우리도 육체의 괴로움과 마음의 불안함과 영적인 의문이 있으면 하나님께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23절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리브가를 향해 두 백성이 태중에 있으며, 두 나라가 태중에서 나눠질 것이며,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한데,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야곱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백성으로, 에서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에돔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다윗의 통치 시대에 확연히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인 에서가 동생인 야곱을 섬기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인한 선택이라고 합니다. 구원은 사람의 뜻이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뜻과 은혜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해 구원을 받은 자로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리브가가 낳은 쌍둥이는 어떠했습니까? 25절과 26절은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고 합니다. 먼저 나온 아이는 몸이 붉었으며, 피부가 털 옷과 같았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에서라고 했습니다. 에서의 후예를 에돔이라고 하는데 에서의 몸이 붉은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의 몸은 야성적이고 육욕적인 성품을 예견하게 합니다. 에서는 성장하여 뛰어난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그는 들판에 나가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에서보다 늦게 나온 아이는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이는 시간적인 격차가 많지 않다는 것이며, 빨리 태어나기 위해 경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그 이름을 발꿈치를 움켜잡은 자를 뜻하는 야곱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달리 조용한 사람이었으며 장막에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어머니 태에서부터 먼저 나가기를 원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먼저 나가기 위해 에서와 경쟁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 야곱의 모습은 최고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면서 형제들과 경쟁을 합니다. 학교에 들어가 시작한 경쟁은 회사에 들어가서도 끝나지 않습니다. 물론 경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경쟁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경쟁에 집착하면 시기와 질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경쟁의 노예가 되고 시기와 질투하면 육신에 속한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반면에 자족하고 감사하며 축복하는 자가 되면 영에 속한 자로 살 수 있습니다. 최고가 되기 위한 경쟁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장자의 명분입니다. 에서는 들에 나가 사냥을 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야곱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이 죽을 쑤었을 때, 에서가 사냥을 하고 피곤하고 시장하여 들에서 돌아왔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향해 붉은 죽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야곱과 에서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31절과 32절은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합니다. 야곱은 죽 한 그릇과 형 세서의 장자의 명분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에서는 시장해서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장자의 상속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 대단한 특권이었습니다. 육신의 특권은 가정의 대표자가 되는 것이며, 재산에 대한 특권은 다른 아들보다 유산을 배나 받는 것입니다. 영적 특권은 가정에 대한 언약의 대표자가 되는 것이며, 영적 축복의 후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이 주는 특권과 축복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붉은 죽 한 그릇으로 그것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요구에 망설이지 않고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성경은 에서의 행동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까? 34절은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고 합니다. 야곱은 에서가 원하던 죽만 아니라 떡도 주었습니다. 이에 에서는 먹고 마시고 일어나 갔습니다. 그것으로 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장자의 명분을 잃게 되었습니다. 에서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업신여기다, 경멸했다’는 뜻입니다. 에서는 오로지 먹을 것만 보았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을 포기했습니다. 이는 육신적인 필요와 만족을 위해. 영적인 필요와 만족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히브리서 12장 15절과 16절은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고 합니다. 우리의 관심과 필요는 무엇에 있습니까? 혹시 에서와 같이 육신적인 것에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축복을 알고,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육신의 필요와 만족을 포기하는 위대한 결단과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 형의 연약함으로 이용했습니다. 사람들은 최고가 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이용합니다. 다른 사람의 위기를 자신을 위한 유익의 기회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것이 인간적으로는 지혜로운 행동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취이며 성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스카라 T. 포뭄이 지은 ‘깨어짐’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야곱이 깨어짐을 통해 육신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이 되는 과정을 언급합니다. 풍성한 영적 생활의 비결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이 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경쟁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이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기를 이용하여 유익을 얻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깨어졌을 때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최고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최선의 헌신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