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9) : 벧엘로 올라가라 창세기 35:1-15 사람들에게 의미와 가치가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은 아들을 낳고 이름을 두분이 맛선을 보았던 다방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정확히 이름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좀 촌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자기 이름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면 집사님은 의미를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와 가치가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루스라고 하는 벧엘입니다. 야곱에게 있어 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첫째,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창세기 28장 18절과 19절은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고 합니다. 야곱에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여 외삼촌 라반이 있는 밧단 아람을 향해 가는 길에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청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으며 항상 함께 하시며 어디를 가든지 떠나지 않으실 것과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야곱이 돌기둥이 하나님의 전이 되며 하나님이 주신 것 중에서 십 분의 일을 드릴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용기와 소망을 얻었습니다. 둘째, 야곱이 올라가야 할 곳입니다. 35장 1절은 ‘1절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향해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에 머물러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칠 때 나타나셨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가야 할 목적지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33장 18절에서 20절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불렀더라’고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다 세겜이라는 곳에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겜에 집을 짓고 땅을 사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가 벧엘로 곧장 올라가지 않고 세겜에서 약 10년 정도를 머무르게 되었는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야곱의 큰 실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땅의 성주인 하몰의 아들인 세겜으로부터 사랑하는 딸 디나가 욕을 당하고, 그로 인해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 사람들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무엇이라고 책망했습니까? 34장 30절은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고 합니다. 야곱의 가족이 세겜 성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가나안과 브리스 족속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야곱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야곱이 아들들이 사람들을 죽인 것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의미의 단어를 7번이나 사용하여 자신의 안전과 생명만을 염려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야곱이 영적으로 민감했더라면 딸 디나가 세겜으로부터 욕을 당하고,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죽이게 되었을 때, 그 사건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세겜의 사건이 주는 영적인 의미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건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민감함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영적인 분별력을 주시기 원합니다. 영적인 민감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세겜의 일로 인해 불안해하고 염려할 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야곱이 세겜에 머무른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겜에서 평안하게 살아가며 벧엘을 향해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잊고 있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육신적인 풍족함과 평안함이 영적인 위기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도 떠나야 할 곳과 머물러야 할 곳을 분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분별했으면 합니다. 포기해야 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을 분별했으면 합니다. 지금 떠나고 버리고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머무르고 취하고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시고, 결단할 수 있는 용기도 주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에게 있어 벧엘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첫째, 하나님은 항상 어디서나 함께 하셨습니다 1절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형에서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알고 도망하던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떠나고 목이 곧은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여호수아 1장 5절과 6절은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대한 선교적 사명을 주시고 떠나시면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8장 20절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고 하셨습니다.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제자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은 환난 날에 응답하셨습니다 3절은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라고 합니다. 야곱의 생애는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떠돌이 삶에 하나님은 항상 함께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와 위기를 만날 때마다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지 않았더라면 아버지 집에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야곱을 죽이려는 형과 극적인 화해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환난을 만날 때마다 응답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은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위로하시고 건지십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받은 우리는 환난을 당한 자를 위로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견딜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인생의 환난이나 고난이 진정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경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 반응하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환난 날에 응답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환난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9절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라고 합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으로 가는 길에 벧엘에 나타나셔 땅과 자손을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 것이며, 야곱과 자손으로 인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무엇이라고 축복하셨습니까? 11절은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후손의 복을 주시는데 왕이 나오게 하시고, 약속의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모든 것을 가지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길 원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이 땅의 기름진 복을 주시시고, 하늘에 신령한 영적인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후손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로 결정하고 무엇을 했습니까? 2절은 ‘야곱이 이에 자기 집과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합니다. 첫째, 이방 신상을 버렸습니다. 라반의 집을 나오면서 라헬이 드라빔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에 그것을 비롯한 모든 우상을 버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귀하게 여기는 것을 버려야 온전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자신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이는 이방 풍습에 젖어 살던 모든 행위를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먼저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의 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정결한 자의 예배입니다. 셋째, 의복을 바꾸어 입었습니다. 옷을 바꾸어 입는 것은 거룩한 변화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신분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단순히 종교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사람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에 있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향해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벧엘이 있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때 하나님이 만나 주신 곳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할 때 우리에게 나타나신 곳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풍성한 복을 약속하신 곳입니다. 그곳은 어디입니까? 그때는 언제였습니까? 이제 그 영적인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만났던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인 벧엘을 향해 올라가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온전한 헌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