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5) : 사랑은 시간을 초월한다 창세기 29:15-30 예화)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 시인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시가 있습니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부-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들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정현종 시인은 아이도 아주머니도 할아버지도 처녀들도 모두 다양한 모습과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사는 것은 사랑할 시간이 하루 줄었다는 것입니다. 아직 사랑할 시간이 남아 있을 때 더 진실한 사랑, 최선을 다한 사랑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종종 성도들이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는 자리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많은 가족이 후회하는 것은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감사를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많이 있지만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사랑하고 싶지만,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가족과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야곱에 대해 나누는 다섯 번째 시간으로 ‘사랑은 시간을 초월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경험했으면 합니다. 본문은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입니다. 라헬에 대한 야곱의 사랑과 시간에 대해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신앙과 헌신을 고백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외삼촌 라반이 있는 곳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는 양을 치는 라헬을 우물 곁에서 만나 함께 라반이 사는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라반은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영접하여 안고 입을 맞추며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야곱은 한 달 정도 라반과 함께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무엇을 제안했습니까? 15절은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고 합니다. 라반은 야곱이 생질, 즉 누이의 아들이었지만 자기 일을 도와주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야곱에게 어떻게 했으면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야곱은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16절에서 18절은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라고 합니다. 라반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언니는 레아로 시력이 약했습니다. 이는 레아의 시력이 좋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총기가 없는 슬픈 눈이었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동생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이는 우아하고 외모가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외모가 아름답고 매력이 있는 라헬을 레아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이에 외삼촌 라반에게 작은 딸 라헬을 위해 칠 년을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관습에 따르면 남자가 결혼하기 위해서는 지참금을 주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딸을 출가시킨 가정은 노동력이 손실되었기에 보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라헬이 야곱을 만났을 때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지참금은 일반적으로 돈이나 짐승이었으나 노역으로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지참금이 없었기에 노동으로 대신한 것입니다.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20절과 21절은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라고 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칠 년을 섬기겠다는 말을 들은 라반은 딸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보다 야곱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이에 야곱은 라헬을 위해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습니다. 칠 년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며칠 같이 여길 수 있었습니다. 칠 년이 지난 후에 야곱은 라반에게 라헬를 아내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라반과 약속한 것을 지켰기에 정당한 요구였습니다. 라반은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야곱을 속였습니다. 22절에서 23절은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고 합니다. 라반은 야곱이 칠 년 동안 자신을 섬기며 일을 했을 때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과의 약속을 어기고 라헬이 아니라 레아를 신방에 보냈으며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야곱은 당황하여 자신을 속인 외삼촌 라반에게 항의했습니다. 야곱이 라헬이 아니라 레아인 것을 모른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설명합니다. 그것은 지금과 같지 않게 당시는 조명시설이 좋지 않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에 결혼식에 참여하며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야곱이 알고 있었지만 레아를 수치스럽게 하지 않기 위해 모른 척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결혼식에서 신부의 면사포를 들고 얼굴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다고 합니다. 둘째, 야곱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26절과 27절은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고 합니다. 라반은 그 지방에는 언니보다 동생을 먼저 시집보내는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야곱을 속인 것에 대한 변명이며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런 관습이 있었다면 미리 말해 주어야 했을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라헬을 아내로 얻으려면 다시 칠 년 동안 섬길 것을 제안했습니다. 라반의 제안을 받은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28절과 30절은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고 합니다. 본문에 칠 일과 칠년이 나옵니다. 칠 일은 야곱의 결혼식 잔치 기간을, 칠 년은 라헬을 얻기 위해 섬긴 기간입니다. 야곱은 라반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 분노하고 결혼식을 포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내하며 칠 일을 보냈습니다. 칠 일이 되었을 때 라반은 라헬을 야곱의 아내로 주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약속대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야곱에게 있어 사랑과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한 것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 사랑은 시간을 초월하게 합니다. 18절과 20절은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라고 합니다.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혈연단신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결혼을 위한 지참금도 없었으며, 누구도 지참금을 지급해 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결혼을 위해 지참금은 은 50세겔입니다. 은 한 세겔은 나흘 치 품삯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이백 일 정도 일을 해주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약 열두 배가 되는 칠 년을 라반을 섬기고 결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라반이 야곱의 상황을 악용하여 요구한 것인지, 아니면 야곱이 라헬을 너무 사랑해서 원한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칠 년을 며칠 같이 보내며 아내를 얻기 위해 일을 한 것입니다. 그는 라헬과의 결혼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양을 돌보는 일하는 데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난다는 것은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는 날이 하루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시간을 잊을 수 있게 합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겨우십니까? 시간이 너무 더디 가는 것과 같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어떠합니까? 교회를 섬기는 것은 어떠합니까? 때로는 힘들고 지겹고 지치십니까? 아니면 행복하고 즐겁습니까? 더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안타까우십니까? 빌 하이벨스 목사는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는 바쁘기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신경을 쓰고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내었으면 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시간은 짧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를 정도로 즐겁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합니다. 27절과 30절은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고 합니다. 야곱은 라반이 라헬이 아니라 레아를 자신의 방에 들어가게 한 것을 알았음에도 라헬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결혼식을 하는 칠일 동안 인내하며 마쳤습니다. 그리고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고 약속대로 또 칠 년을 라반을 섬기며 일을 했습니다. 그는 십사 년 동안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인내했습니다. 그것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습니까? 요한복음 13장 1절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전에 세상을 떠나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실 줄을 알았습니다. 이는 가롯 유다의 배반과 악한 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잡히신 후에 제자들이 떠날 것을 아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셨습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먼지로 인해 더럽혀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야곱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을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시간이 없어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포기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끝내고 싶은 관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시간을 초월한 사랑이 있었으면 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사랑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우리의 직분과 사명을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영혼을 사랑함으로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