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2:1-70(1-3, 68-70)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기 수고하고 헌신했던 사람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바사 왕 고레스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후원자들이었습니다. 에스라서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제건하는 것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서는 에스라가 BC 444년 경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7장 6절은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라고 합니다. 그는 제1성전에서 봉사한 마지막 대제사장이었던 스라야의 아들이며, 예루살렘 귀환 후에 건축한 제2성전의 제사장이었던 예수아의 친척입니다. 제사장이고, 서기관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에게 구하는 것을 모두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에스라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에스라는 우리에게 진정한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에스라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스라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르호보암을 중심으로 남유다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로 분리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었습니다. 남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되었습니다. 그중에 남유다는 세 번에 걸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1절과 2절은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살던 백성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칠십 년이 차자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사람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느헤미야서를 기록한 사람이 아니며, 모르드개는 에스더서에 나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귀환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의 초대 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BC 536년에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49,897명이 귀환을 했습니다. 그들의 귀환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차 귀환은 BC 457년에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따라 에스라를 중심으로 1,754명이 백성들의 말씀 회복, 즉 영적 회복을 위해 돌아왔습니다. 3차 귀환은 BC 444년에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로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42,360명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1장 5절과 6절은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단어는 세 가지 동사입니다. 그것은 ‘올라가서, 일어나니. 드렸더라’는 것입니다.이 단어는 모두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한 구체적인 행동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면 그것에 멈추며 만족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하나님의 감동 혹은 감격과 감사하는 정도에 머무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는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30m로 포로 생활하고 있던 곳보다 높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올라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올라가는 것으로 말한 것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로 인해 포로 생활을 한 것은 영적으로 내려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전을 향해 가는 것을 올라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혹시 영적으로 내려가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감동으로 인해 올라갔으면 합니다. 올라가는 길은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라가는 길이 축복입니다. 영적으로 날마다 한 걸음씩 올라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향해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을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본문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을 실행하기로 결단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때 낙심하고 절망하던 자들이 더 이상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다. 혹시 영적인 침체와 삶의 고난 가운데 주저앉아 있습니까? 악한 습관과 죄악을 버리고 일어나야 합니다. 낙심과 절망을 극복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무기력과 고통과 슬픔을 이기고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 가운에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기 위해 일어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편 그 길에 동행하지 못하던 사람들은 그들을 돕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고레스 왕은 느부갓네살이 왕이 탈취해 왔던 성전의 기물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있을 때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 순종함으로 헌신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68절과 69절은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힘 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이니 금이 육만 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백 벌이었더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기 위해 일어났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 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위해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드렸습니까? 그들은 ‘기쁘게 드리되 힘 자라는 대로’ 드렸습니다. 이는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드렸는가? 어떤 태도로 드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얼마나 드리는가?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 어떤 태도로 드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이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예물을 드리는 것을 즐겁게 여겼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고 교회를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즐겁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수고하며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 자라는 대로 드렸습니다. 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없는 것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재능은 주능입니다. 즉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있어 액수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통해 수고하고 섬기고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누가 할 수 있습니까? 교회를 세우는 일은 누가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재능과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감동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면 거룩한 수고와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을 때 우리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마음이 움직일 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감동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 감동하심을 따라 올라가고 일어나고 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감사함으로 수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함께 하나님의 감동을 경험하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