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탁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5 예화) 폴 워셔의 「복음」 폴 워셔는 ‘복음’의 서문에서 ‘복음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락된 가장 귀한 보물이다. 복음은 많은 진리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진리 위에 뛰어난 최고의 진리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좋은 소식을 뜻하는 헬라어 유앙겔리온(εύαγγέλιον) 에서 유래했다. 성경 전체가 복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통해 완성된 구원 사역에 관한 메시지다’ 라고 합니다. 성경은 복음에 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관심은 복음, 즉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관해 가장 핵심적인 것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것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합니까? 요한일서 4장 9절과 10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화목 제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한 사랑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주는 거룩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피로 고백한 사랑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복음의 은혜에 감격한 사람입니다. 이에 바울은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을 지배하던 것은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평생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았으며, 그것을 최상의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과 헌신을 순수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순수한 동기와 목적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통해 교회는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를 발견했으면 합니다. 그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결단이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복음 전할 부탁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4절은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복음의 청지기입니다. 성도들은 복음을 위탁받은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위탁받은 것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믿고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탁받은 교회와 성도들은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입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삶으로 복음을 증명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을 위탁받은 하나님의 사람의 사명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것을 예수님께 위탁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어떻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까? 우리도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첫째,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1절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일행들이 전한 복음 전파의 사역이 헛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결신자들을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단순히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성령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전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인간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항상 좋은 환경이나 상황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어떻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2절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고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점치는 여종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옷이 찢기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많은 고난과 능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파를 위해 고난을 겪은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겪은 고난과 핍박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고난을 은혜로 여길 수 있는 자가 복음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발적인 불편함을 선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복음 전파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에 있습니까? 2절 하반절은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영적 싸움입니다. 그 영적 전쟁은 악한 마귀와 세상과 육체의 정욕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복음을 위탁받은 자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기뻐하고 환영하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환경이라도 극복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는 복음 전파를 위한 많은 장애물이 존재하는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영적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의 역사를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 전파를 위한 거룩한 부담과 능력을 주시고 환경과 여건을 극복할 수 있게 하실 줄 믿습니다. 둘째,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당시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전도에 대한 동기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세 가지 단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의 매우 순수한 동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3절은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① 간사란 오류를 의미하는 것으로 진리가 아닌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② 부정이란 정결하지 못한 것으로 불순한 동기를 의미합니다. ③ 속임수는 감언이설로 상대방을 속여 이익을 취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반드시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불순한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데 갖는 순수하지 않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 성장의 방법으로만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 전파를 통해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교회 성장을 위한 방법과 목적으로만 복음을 전파해서는 안 됩니다. 전도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소원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를 위해 예산을 지출하고 그것에 대한 결과가 원하는 만큼 일어나지 않으면 실패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철저히 투자와 이익이라는 경제 논리를 통해 전도를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실패가 없는 거룩한 사역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까? 5절은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고 합니다. 복음 전파는 불신자를 말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아첨하고 속이는 것도 아닙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로운 생각이나 감정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에만 관심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복음을 전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달라고,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열매와 결실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 전파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도 아닙니다.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은 더 아닙니다.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복음의 역사와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영적인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위탁받은 자로 전하고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복음을 위탁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할 거룩한 사명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셨습니까? 복음을 위탁받으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위탁하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순종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까? 어떻게 복음을 전하시겠습니까? 언제 복음을 전하시겠습니까? 복음을 위탁받은 자로 살아가기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